매거진 일기

2020. 9. 6 일

by 홍석범

로즈메리의 아기에서 미아 패로우는 남편의 급작스러운 성공과 친구의 죽음, 이웃들의 과도하고 비정상적인 관심과 친절을 점차 의심하게 되고 자신의 곧 태어날 아기가 사탄을 숭배하는 마녀 집회의 제물로 바쳐질 위험에 처해있다고 믿게 된다. 그녀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악명 높은 자신의 브램포드 아파트에 감금되고 진정제가 투여된 상태로 아기를 출산하는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것은 그 아기가 제물로 바쳐질 인간 아기가 아닌 사탄의 아들이라는 예상 가능하면서도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사실이다. 로만 폴란스키는 4세 때 파리에서 폴란드로 이주했는데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당시 8세였던 폴란스키는 크라코의 유태인 게토를 탈출한 뒤 독일군을 피해 전국을 전전했는데 이 생생한 죽음의 공포와 집념은 훗날 그의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분위기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무르익음에 따라 특유의 어둡고 억압된 심리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기 뱃속의 악마의 씨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즈메리의 상황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유전에서 토니 콜렛이 그녀의 아들 알렉스 볼프에게 나는 너를 죽이려 했던 게 아니라 보호하려 했던 거라고 소리치는 장면 때문인데, 애니의 어머니는 마녀 집회의 여왕으로 애니의 오빠이자 자신의 아들의 몸에 지옥의 왕인 파이몬의 영혼이 들리도록 시도하지만 그가 자살함에 따라 자신의 딸의 아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애니는 계속 유산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터를 출산한다. 로즈메리와 애니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쩌면 가장 소름 끼치는 사실은 우리 모두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희망 없음 혹은 인생에 대한 바랄 대로 바라고 허무주의적이 돼버린 정신의 표현은 아닐까, 마녀라는 오컬티즘은 단지 재미를 위한 요소에 불과할 뿐이며 사실은 훨씬 더 본질적인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 냉소적이고 단지 물음으로서 그쳐버리는 물음표가 이미 일종의 환유는 아닐까, 그러면서 나는 시넥도키 뉴욕을 떠올렸고 자신의 삶을 미니어처 모형으로 재현하면서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 니힐리즘과 숙명론에 무의식적으로 굴복한 듯한 애니의 강박적인 예술 활동과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그녀의 절망적인 대사와 모빌 대신 뒤집어진 십자가가 달린 요람으로 다가가는 로즈메리의 뒷모습이 뒤섞이면서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찜찜함을 어떠한 논리로 해소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지만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냉정하게 말해 필요하지도 않다고, 왜냐하면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며 영원히 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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