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L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받아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막 나갈 참이라고 했고 나는 사방에 떨어져 있는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 모르는 벌레들을 잡다가 잠에서 깼다. L은 내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로 사실 같은 반이었던 3학년 동안에는 친구라기보다는 모르는 사람에 가까웠고 일 년 동안 그가 궁금했지만 말은 걸지 않았던 내가 졸업식 당일 학교가 끝났다는 해방감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무턱대고 밥을 먹자고 했을 때 마찬가지로 어떤 욕구불만이 쌓여 있던 그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바로 그날 우리는 동네 피자집에서 만나 피자 두 판을 시켜놓고 8시간 동안 얘기만 했는데 내가 온갖 것들,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느끼던 모든 것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면 그 역시 그 각각의 모든 것들에 상응하는 어떤 말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 놀랐던 것 같다. 지금껏 그런 대화랄 것을 친구와 나눠본 적이 없었고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유대감을 누군가에게서 느껴본 경험 없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로서는 L과 친구가 된 것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속 얘기는 잘 하지 않는 그 역시 시간이 지난 후 언젠가 같이 피시방만 전전하던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지긋지긋함과 허무감이 쌓여오던 차에 진정한 친구를 갖게 돼 인간관계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해소되었다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 고백 아닌 고백을 듣는 것이 좋았다. 운이 좋게 나는 원하던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는 첫 입시에 실패했고 할머니의 돈으로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그가 경기대 기계공학과에서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반수를 해 국민대 기계공학과로 옮겼을 때 나는 학교에서 기본 설계를 막 배우기 시작한 참이었는데 그때 우리는 학교도 함께 다니고 군대도 함께 가는 것이 계획이었으므로 나는 매일 밤 동네 카페에서 새벽까지 L에게 건축에 대한 환상과 설계에 대한 온갖 쓸모없는 잡지식을 늘어놓으며 펌프질을 했다. 그는 머리는 좋았지만 의욕이 쉽게 식고 행동력이 부족한 몽상가였고 이미 수학 학원 강사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자신의 동생과 그에 대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신뢰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국민대에서 다시 건축학과로 전과했지만 또 한 번 수능을 쳐 결국 우리 학교 건축학과 1학년으로 들어왔고 그때 이미 4학년이었던 나는 바르셀로나로 교환 학생을 다녀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기가 조금 엇갈리긴 했어도 바라왔던 대로 우리는 드디어 같은 공간에 있었고 보잘것없지만 함께 건축을 논하고 세계를 논하면서 얄팍하다면 얄팍한 대로 같이 무언가를, 그것이 건물이 안된다면 어떤 생각과 표현에 대한 의지를 구축해보자는 로망은 드디어 이뤄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그의 설계실로 내려갔을 때 그는 지나가는 투로 나에게 기다려달라고, 너에게는 아직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이 있으며 그것을 해결한 뒤에만이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왜 친구라면 함께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L과 연락이 끊긴지는 5년 정도 되었는데 약대 편입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내가 들은 그의 마지막 소식이다. 이마저도 몇 년 전으로 내가 C에게 그가 뭘 하고 사는지 물었을 때 그는 자신도 L과는 2018년 초 카톡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어쩌면 나는 L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그는 어느 순간 지치게 됐는지도 모른다. 혹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은 전부 뒤엉켜 있어 사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 번도 이런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지 않았나.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없고 설명이 불필요한 또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일들로 인해, 혹은 그 시작점이 어딘지 결코 알 수 없을 하나의 길고 불투명한 사실로 인해 우리는 싸움도 없이 멀어졌다. 그를 만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