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9. 10 목

by 홍석범

신 교수님은 항상 요즘 관심 있는 주제로 아무 얘기나 부탁합니다하는 식이었고 나에게는 그때그때의 고민들을 건축적 사유의 틀 안에서 정립하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주어졌다. 이것은 나의 정신적 발전에 대단히 큰 도움이 됐는데 대부분 개인적인 취향과 관심에 의해 머릿속에 뜬구름처럼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갑자기 대중들에게 내보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이미 그 자체로 사유와 언어의 훈련이었다. 혼자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쓸 때 가장 즐거운 경험은 무의식중에 채집되어 있던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어떤 유연한 흐름을 형성하는 것인데 강연이라는 형식은 그 개념들을 이제 하나의 가시적이고 소급적인 사유로 구성한 뒤 나라는 개인에게 최고도로 문학적인 순간이었던 그 흐름을 연극으로 재현하도록 요구했다. 이것은 단순한 읽기나 쓰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흐름이라는 것은 본능적이고 거의 예측할 수 없어 그것에 대한 말이 필요해졌을 때 나는 그것을 추적한다기보다는 단지 기다릴 뿐이었지만 동시에 이미 그것이 내 안 어딘가에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것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을까) 그다지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또한 어떠한 개념은 원고를 쓰기 시작한 이후에야만, 즉 대화를 시작한 이후에야만 표현 가능한 방식으로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A는 B다라는 문장을 생각한 뒤 그것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A는을 쓴 뒤에야 비로소 B가 떠올라 쓸 수 있는 것이며 이는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의 카다브르 엑스키와 같아서 일종의 놀이이고 그 결과물은 언제나 소급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훈련은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동시에 그러한 흐름들은 나를 자연스럽게 다음 작업으로 이끌었는데 이를테면 전역 직후 썼던 아니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사물에 대한 사랑과 애니미즘에 대한 원고는 표현 의지와 건축의 대상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마니아적인 해석이었고(당시 강연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내가 스튜디오 지브리 사옥 앞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찍은 사진이었는데 신 교수님은 그 여러모로 말도 안 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이 아닌 만화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그다음 원고의 주제들인 세잔, 시와 조각, 언어의 시간성, 큐비즘과 오블리크 드로잉, 존 헤이덕, 마시모 스콜라리와 플로티노스 등으로 이어졌다. 독일로 오기 전 객기보고서 후일담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기 쓰기와 문학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그 이전의 모든 주제들과 수프처럼 몇 년 동안 뭉근하게 끓여져 졸업 설계를 준비하면서 쓴 Bibliotheca의 첫 장이 됐다. 그리고 이번 강연에서는 졸업 설계를 하면서 고민했던 주제들 중 현재 교수님의 스튜디오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유형론과 분류학, 루이스 칸, 언어와 보르헤스 등을 언급할 생각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각 강연들은 나의 산만하고 중심 없는 사유 체계에서 아주 중요한 결절점임이 틀림없는데 이 모든 건 시기적절하게 아무 얘기나 해달라고 부탁해 주는 신 교수님의 믿음에 의한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재미있어하는 건 교수님도 재미있어하고 우리 둘 모두 사유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건축적인 건축 행위라는 다소 몽상가적인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원고를 쓸 때마다 나는 후배 학생들에게라기보다는 사실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고 그건 조금 더 격을 갖춘 방식으로 일기를 쓰는 거나 다름없었다.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일은 그 생각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자체로 너무도 신비롭고 짜릿한 일이어서 뒤죽박죽이던 단어들이 하나의 유연한 말하기가 되는 것만큼 즐거운 경험도 없는데 더구나 그 개인적이고 지루한 일기를 종용하고 함께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고마운 사실은 작업을 할 때나 말을 할 때 언제나 그리고 계속 개인적일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이건 나의 건축학도 인생을 통틀어 아마도 내가 얻은 가장 값진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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