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9. 11 금

by 홍석범

하루 종일 무기력과 싸워야 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단 호크가 일기장에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쓴 뒤 지우지 못하는 장면에서 일기 쓰는 남자에 대한 소설을 떠올렸다. 그는 일기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평생 고민한다. 그는 자신과의 대화체로 쓰면서 플라톤을 모방하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본받아 세계를 혹은 자신을 언어로 번역해야만 하는 애처로운 운명에 처해있다. 그는 아마추어 작가들, 즉 공공적이고 소급적으로 쓰는 인간들을 경멸한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순수하고 미학적인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이미 자신의 실험에 실패했고 일기장을 불태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어차피 그 잡종의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이 그것이 불태워진 이유는 아니다. 오만하고 동시에 불행했던 아무개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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