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9. 19 토

by 홍석범

바이엘러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위해 빔 벤더스는 14분짜리 3D 입체영상을 만들었는데 간이 상영관 앞에는 회화와 영화가 서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한 진부한 언급이 있었고 호퍼의 유명한 장면들을 그대로 현실의 공간으로 재구성한 영화(감독은 그것을 인스털레이션이라고 불렀지만)는 마찬가지로 새로울 게 없었다. 차라리 완전히 극사실주의를 표방했다면, 영화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했다면 시시한 재구성을 탈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당연히 감독은 배우들이 대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어색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침묵하거나 담배를 피웠지만 그 발연기는 이것이 호퍼 감성이라고 면전에 들이대면서 삼류 패러디를 보는 듯한 싸구려 기분이 들게 했다. 결과물은 영화도 회화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였는데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그 효과는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배우들은 미장센을 완전히 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 모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호퍼가 그린 것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은유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침 해라는 제목으로 분홍색 잠옷을 입고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여자라는 은유가 갑자기 실제로 분홍색 잠옷을 입고 맨살을 드러낸 인간 여자가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어딘가 상스럽게 느껴졌다. 도서관의 마지막 이미지들을 위해 나는 호퍼와 호크니의 그림에서 사람들을 차용해 썼는데 그걸 본 신 교수님은 그들이 마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동물들 같다는 인상적인 말을 했었다. 도서관은 섬이기도 했기 때문에 군함도를 자연화하고 그곳에 동물들을 풀어 동물원-섬으로 재생시킨다는 다소 망상적이지만 재밌는 프로젝트가 떠올랐고 그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이미지 속 인간이 버린 건물에서 거주하고 있는 기린과 원숭이 따위의 동물들을 보면서 그것이 은유로 느껴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빔 벤더스는 이와 정반대를 시도했고 그로 인해 동물들은 웅녀처럼 모두 인간으로 변했는데 이 비은폐는 모든 것을 덜 신비롭고 저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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