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른 채 벽을 보고 얘기하듯이 준비한 내용을 읽었다. 신 교수님과 요한나만 반응이 있었을 뿐 채팅창에는 어떤 질문이나 코멘트도 올라오지 않았고 그건 얼굴도 전혀 모르는 칠십 명의 학생들이 내가 최대한 천천히 영어로 읽어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거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 둘 중 하나일 텐데 아마도 후자였을 것이며 결국 흥분한 신 교수님과 요한나 그리고 나만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다 강연은 끝났다. 줌에 대고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인데 누가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다시 내가 과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괴리는 불쾌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다. 화면에 떠 있는 얼굴들은 단지 축적된 지연들로 데리다는 이것을 유령이라고 불렀다. 아까 거리에 대해 언급하면서 문득 이 모든 상황을, 줌을, 거리라고 할 수는 없다고, 이것은 강제된 것이고 나 스스로의 물러남과는 무관한 척도도 파토스도 없는 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