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III
KTZ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갔는데 유령들의 논리라는 제목이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기 위해서였다. 다소 현학적으로 써놓은 보도 자료는 반쯤 읽다가 그만뒀고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못과 액자 고리 같은 작은 디테일에까지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그림들이 베이컨과 라스닉을 섞어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S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꼰대 마인드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하지만 나는 베이컨을 좋아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것에서 자기가 아는 것을 가장 먼저 찾게 되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크로이즈베르크는 돈 없는 예술가들과 학생들, 터키인들이 사는 동네로 코트부서 토어역은 비둘기 똥으로 뒤덮여 있으며 작은 운하와 그 옆에는 온갖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시장이 있는데 운하를 걸을 때 이틀 동안 그치지 않던 비가 그쳤고 아주 잠깐 해가 났다. 카페 테라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는 나를 들뜨게 했고 나는 속으로 코로나를 저주했다. 계속 걷다 보면 나오는 도시락집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문자를 보내니 오늘은 일이 있다며 원하면 내일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오늘 밤에 떠납니다라고 답장을 하고 버스를 탔다.
미셸 마예루스를 나는 전혀 몰랐으며 알았다 해도 관심이 없었을 종류의 아티스트지만 이번에 무라카미의 그에 대한 헌정 혹은 재해석이라고 할 만한 전시를 통해 둘 모두를 조금 알게 됐다. 후버는 디터가 이 전시에 대해 어딘가에 어떤 글을 썼다고 했는데 내가 마예루스의 전 스튜디오 현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 여자는 그들이 소개해 준 베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이름의 지인은 아니었다. 무라카미는 아마도 인스타를 통해 마예루스를 처음 알게 됐고 둘은 동시대 인물이었지만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마예루스의 작품들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무라카미는 그의 에스테이트 사람들에게 연락했고 그의 작품들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만들겠다고 했다. 작품보다도 재밌는 건 무라카미가 토비아스 베어거의 질문들에 대답하는 비디오였는데 그는 마예루스는 똑똑했기 때문에 벽이나 캔버스에 바로 자신의 비전을 그릴 수 있었지만 자신은 기억력이 매우 나빠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자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섬세함과 기계 조작 능력뿐이라는 점에서 자신은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과 독일 모두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실은 예술가들이 완전한 환희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이 일종의 자기-억제 내지는 욕구불만의 상태가 자신이 독일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설명하고는 자신은 독일 예술을 좋아하는데 당신들은 왜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전시를 보고 관심이 간다면 꼭 연락을 부탁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마예루스가 바스키아나 워홀을 차용했던 방식으로 이제는 무라카미가 그를 차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마예루스의 예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갤러리 여자는 말했는데 내가 그녀에게 독일인들이 무라카미를 싫어하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마도 십 년 전쯤 함부르크에서 열렸던 큰 전시 때문에 무라카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전시에 대한 독일 예술계의 반응은 거의 최악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테크닉의 차이일 뿐 마예루스나 무라카미나 크게 다르지 않으며 여자가 아마 당시에 독일인들은 무라카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을 뿐 이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그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나는 예술에서 이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처 일식당에서 참치와 갑오징어 초밥과 고등어조림 정식을 먹었는데 비싸지도 않고 맛있었다. 막달레나에게 이게 스시야!라고 사진을 보내줬다. 새미스에서 K와 카톡을 하며 널브러져 있다가 공항으로 가기 전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그로피우스 바우에 들렀다. 에스닉 작가들로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중 안드레스 페레이라 파즈라는 사람의 작품은 이번에 베를린에서 본 것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이었다. 여기에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어둔다.
As fires ravaged its native Amazon habitat in 2019, a solitary guajojó bird flew to extraordinary heights to find safety in La Paz, Bolivia. Its sighting there caused a sensation and was reported in the local press. In the darkness of the installation, the guajojó is heard but not seen; its heartbeat and call resonate in a space softly illuminated by spheres of slow-burning fire and inhabited by celestial bodies. The metallic stars accompanying the flying bird reference the line drawings in the seventeenth-century manuscripts of Felipe Guáman Poma de Ayala, who is known as the first Amerindian chronic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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