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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02. 2020

2020. 10. 31 토

코바흐에서의 이튿날. 낙엽이 눈처럼 떨어진다. 아침에 발코니에서 차를 마시면서 오늘부터 이것은 새로운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이 장소에서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라인에서 살 때 청년 소로우가 자신이 지은 숲속 오두막에서 호메로스를 읽는 모습에 감명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곳도 월든처럼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어쩌면 내 유학은 이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움멜둥을 한 뒤 간단하게 장을 봤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삶의 모든 행위가 같은 방에서 일어났지만 이제는 공간이 세 개로 나눠졌기 때문에 각각에 용도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혼자 살면서 처음으로 공간 활용의 여유로움을 알게 된 것이다. 15유로를 주고 유일하게 샀던 가구인 이케아 책상을 버리지 않고 들고 왔는데 침실의 옷장 옆 구석에 딱 맞게 들어갔다. 잠들기 전 이곳에서는 보스코와 같은 작가를 읽어야 한다. 거실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던 일인용 소파를 구석으로 치워 식탁과 소파 사이 공간이 넓어졌고 유카 나무는 물을 준 뒤 밖으로 내놓았다. 사방에 걸려 있던 싸구려 그림들을 전부 떼어 청소기와 함께 창고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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