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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08. 2020

2020. 11. 7 토

일주일간  스스로를 관찰해본 결과 나는 일을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는데 말을   알아들었을 경우에는 되묻는 것을 꺼려 애매하게 상황을 넘기려 한다. 독일어가  수월해지기 전까지는 다시 질문하고 제대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무소 분위기는 쓸데없는 스몰 토크가 없어 좋고 크리스토프는 우리들이 알아서 일을 진행하도록 놔두는 편이다.  나흘간은 거의 방목되다시피 하여 혼자서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고 무엇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했는데 어제 그와 처음으로 둘이서 마스터플랜을 논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이 생겼고 빌바오 팀과는 줌으로 설계안의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크리스토프는 그들에게 나를 WOL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소개하면서 내가 그들 건물의 허가도서를 그리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바쁘며 오후가 되면 머리흐트러지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는데 다소 몽상가적으로 말하고 사소한 일들에 있어서는 그다지 꼼꼼하지 못한 편으로 이는 어쩌면 그럴 시간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앉아 있을 때는 자주 어딘가에 다리를 올려놓는다. 그에게는 특유의 애티튜드라고  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약간 그를 건축가처럼 보이게 만들며 나는 혹시 그가 일부러 그러한 모습을 의도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7시 2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8시에 집을 나서면 8시 25분에 사무소에 도착한다. 출퇴근길은 숲길과 공원이고 중간에 레베와 카우프란트가 있어 장보기가 쉽다. 점심시간은 실용적이게도 30분으로 항상 사무소에서 5분 거리인 빵집 근처 벤치에 앉아 햄과 치즈를 넣은 빵과 감자칩을 먹는다. 처음 싸간 빵을 먹었을 때 이상하게도 세인트 헬레나 시절을 생각했다. 5시에 퇴근하는데 클라우디아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아무도 야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12시면 금방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 별로 힘들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에 잘 적응한 듯하고 다음 주부터 퇴근 이후에는 다시 운동과 개인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일주일 내내 날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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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파를 해결하기 위해 링 맞은편에 있는 침구 가게에 다녀왔는데 운이 좋게도 원하던 재질의 대형 담요가 세일 중이었고 그것과 소파 천용 세제, 방에 놓을 방향제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종소리가 들렸고 햇빛과 나른한 정적과 길에 깔린 돌들이 포르투나 바레제를 떠올리게 했다. 오늘 깨달은 사실은 이곳에는 비둘기가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 있는 많은 더러운 것들이 이곳에는 없다. 오후 내내 창문을 완전히 열어놓고 소파와 사투를 벌였고 그 위에 덮을 네 개의 부드러운 담요를 빨았다. 먼지 때문에 목이 아파 계속 차를 마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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