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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09. 2020

2020. 11. 8 일

요즘의 일기는 거의 표면적인 것만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어떤 인식을 제공한다.


사무소 밖에서는 절대로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 규칙을 깨고 잠시 WOL 프로젝트에 대해 적으려 한다. 크리스토프는 에더제의 샤이트 반도에 일종의 예술 단지 프로젝트를 구상했는데 이것이 웨이스 오브 라이프다. 전 세계 19개 사무소가 참여해 각 부지에 다소 아방가르드 한 주말 별장을 한 채씩 설계했고 2017년 칼스루에에서 처음 마스터플랜과 각 설계안이 전시된 후로 집들은 다양한 건축주들에 의해 선택되어 조금씩 디벨롭되었다. 예를 들어 멕시코 건축가 타티아나 빌바오가 설계한 집의 건축주는 테라피스트 부부로 일층은 테라피룸, 이층은 부부의 주거 공간이다. 현재 일곱 개의 설계안이 이처럼 건축주와의 의견 조율을 통해 거의 설계가 마무리되었고 크리스토프는 내년 봄부터 이 집들을 짓고 싶어 하는데 그가 1단계라고 부르는 이 계획에는 그 외에도 마스터플랜에서 노드 역할을 하는 작은 뮤지엄과 WOL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세미나 건물, 숲속에 위치할 파빌리온 등이 포함된다. 그는 캠퍼스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실제로 비트라 캠퍼스처럼 건축과 디자인이 혼합되는 예술 아카데미아를 상상하고 있는데 WOL 아카데미의 경우 다양한 디자인 브랜드들의 투자로 건물이 지어지고 각 브랜드별로 돌아가면서 그 장소에서 일정 기간 세미나를 주최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금요일에 크리스토프는 심지어 이곳에 올 학생들이 혹시나 하룻밤 자고 싶어 할 가능성에 대비해 침대가 열 개 정도 들어가는 게스트하우스를 뮤지엄 맞은편에 짓는 것은 어떻겠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하수도 설계도 안 된 방대한 부지 전체를 먼저 사들였고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홀로 구상한 후 벨기에,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중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칠레, 스페인, 한국, 노르웨이, 멕시코와 일본에서 18명의 건축가들을 섭외해 ‘자연과 함께하는 집’ 설계를 맡겼는데 각 프로젝트가 건축주를 찾는 과정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첫날 전체 사이트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신은 집 장사꾼이 아니며 건축주에게 부지를 팔 때 부동산으로 나는 수익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로지 설계비만을 받아 그것을 원안 건축가와 일정 비율로 나누는데 기본 설계는 섭외된 건축가가 하지만 허가도서는 독일 기준에 맞춰 우리가 그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가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일종의 건축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무모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추진력과 유토피아에 대한 꿈같은 이상주의는 크리스토프의 건축가적 면모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고 존경할만한 것이다.


앞으로 나의 업무는 마스터플랜을 크리스토프와 확정하고  설계안의 진행 상황을 관리하면서 빌바오 협업하여 테라피스트 집의 허가도서를 그리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실무의 거의 모든 단계를 경험해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일을 시작한 건축학도에게 이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지금부터는 온전히  재량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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