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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12. 2020

2020. 11. 11 수

크리스토프와 마스터플랜에 대해 한 번 더 얘기했고 그는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야마자키의 설계안을 게스트하우스로 하고 싶다는 내 의견을 그는 받아들일 것 같다.


플랜을 꾸미기 위해 구글에서 수채화 재질을 검색하던 중 이게 얼마나 이상한 짓인가 생각했다. 우리는 물감과 붓으로 수채화를 그리지 않고 포토샵으로 수채화로 그린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건축에서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크리스토프의 사무소에는 충격적이게도 트레이싱지나 스케일, 자, 하다못해 홀더나 연필조차도 없다. 각 책상에는 맥이 놓여 있고 회의실에는 화이트보드라는 거대한 기계가 벽에 달려 있는데 우리가 컴퓨터로 작업한 파일을 그 서버에 ‘던져 넣으면’ 크리스토프가 화이트보드상에서 터치펜으로 이런저런 수정을 하고 우리는 다시 그 파일을 넘겨받아 손본다. 컴퓨터로 뭔가를 그리면 나는 중간중간 인쇄해서 보는 습관이 있는데 스크린은 어딘가 믿을 수 없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나뿐이다. 한국에서 S가 처음 사무소 일을 시작했을 때 계속 도면을 인쇄해서 확인하는 그녀에게 머저리 같은 어떤 사수가 워크플로우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뭐라 했었다는 기억이 있다. 바코우와 인터뷰를 했을 때 그는 내 포트폴리오의 많은 그림들이 손으로 그린 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당장 베를린으로 달려와 공모전을 보조할 그래픽 툴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런 걸 할 마음이 없었을뿐더러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는 이런저런 그림들을 가리키면서 이건 어떤 프로그램이죠?라고 물었고 나는 손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약간 놀라면서 마치 쿠퍼나 수퍼스튜디오 시절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아 옛날 생각이 난다고 했다. 건축가가 된다면 나는 살아본 적도 없는 과거 속에 사는 구시대적인 건축가가 될 것이다. 바코우는 그것이 신선하다고 했지만 나는 단지 구시대적인 것들을 좋아할 뿐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렸고 진지하게 말했으며 그런 것들을 알아보는 품격이 있었다.



컴퓨터로 수채화를 그리려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난  집에 오니 진짜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릴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그냥 물감에 붓을 찍어 손이 가는 대로 그렸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걸 이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그림의 작은 부분만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진한 E처럼 코르뷔지에를 따라 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덧붙여 그리기로 했고 다만 아주 오랜 기간 꾸준히 해보기로 했다. 2 동안 내가 하나의 운동을 지속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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