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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22. 2020

2020. 11. 20 금

이본의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라고 했고 아마도 보건부에서 사람이 나와 우리는 전부 한시에 속성 테스트를 받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긴 했지만 나는 바로 어제 이본과 옆에서 대화를 나눴고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사무소 사람들 전부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건부 직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쾌활하게 누구 코를 먼저 찌를까요라고 했는데 나는 이 태도가 내 기분을 가볍게 했는지 더욱 상하게 했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지만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그다지 안도감을 주지도 않았다. 이본은 남편의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고 남편 역시 테스트를 받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이틀 혹은 더 많이 출근했고 자기 책상에서는 남들처럼 마스크를 벗고 일했다. 게다가 이제는 내가 그녀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현재 직원들 간의 거리를 더 늘리기 위한 크리스토프 나름의 대책으로 내가 원래 이본의 자리였던 끝 자리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귀를 의심했고 이본은 확진자나 다름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독일인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무지하고 내가 거부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는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물건을 모두 치우고 소독약으로 몇 번이나 책상과 바닥을 닦은 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의자와 컴퓨터를 옮겼다. 독일에서는 확진자가 나와도 체계적으로 소독을 한다거나 일정 기간 장소를 격리한다거나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사람들도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그저 이 모든 사태를 골치 아픈 독감 유행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데 보건 개념이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들 때도 왕왕 있다. 사방에 바이러스가 들러붙어 있는 듯한 더러운 기분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했으니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문자 그대로 내 2미터 반경 안으로 갑자기 코로나가 들어온 것인데 지금까지 순조로웠던 새 삶이 그것에 침략당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청소와 이사를 마친  다소 짜증이  상태로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거대한 소포가 배달됐고 크리스토프가 나에게 이건  거야라고 했다. 박스를 보니 신형 아이맥 프로였다.   주간 나는 방치되어 있던 2015년도 버전의 깍두기 컴퓨터를 썼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 쟈밀라나 루이자가 학교에 가는 날이면 그들 자리를 전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미 퇴사한 아무개의 계정으로 접속해 지금까지 어떻게든 일을 해오면서 종종  역시 아무개인 듯한 기분을 느꼈다. 회사에서 누군가의 자리와 업무를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사실과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직원이 생길 때마다 크리스토프가  컴퓨터를 사주는 것은 아닐 것이고 시기적으로 어떤 운이 작용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단기 세입자 같은 느낌의 불편함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기 위해 행동을 취한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간사하게도 27인치 5K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번쩍거리는 비닐을 뜯으면서 금방 일에 대한 의욕이 살아났다. 이것으로 코로나를 무찌를 수는 없겠지만 다른  개의 의미 있는 일들을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있기 위해 나머지 오후를 프로그램을 깔고 이런저런 세팅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름으로 계정을 등록하면서 단순한 뿌듯함을 느꼈다. 사무소 모든 계정의 비밀번호는 ‘코바흐 시작하는데 내가 쓰던 아무개의 비밀번호는   자리가 2019였고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2021 설정했다. 누군가가  계정을 물려받거나 코바흐2023 새로운 비밀번호가  때쯤 내가 조금  유용한 인간이 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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