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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Nov 22. 2020

2020. 11. 21 토

노트북에서 바로 쓴다.


독일에 도착한 것은 2017년 11월 20일이었고 그 이튿날부터 다시 일기를 썼다. 노트와는 다른 어떤 형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중에 트렌드에 민감한 K가 브런치라는 걸 알려줬다. 작가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괜찮아 보였고 어찌어찌 가입을 해서 그때부터 여기다가 바로 쓰거나 노트나 찢어진 종이에 끄적인 것들을 여기에 옮겨 적었다. 아무 때나 들어와서 수정하거나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편리했다. 지금 보니 3년 동안 이삼일에 한 번꼴로 뭔가를 쓴 모양이다.


아마도 카디비는 그녀의 정신없는 인스타그램 비디오들 중 하나에서 자신의 페이지에 실패담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던 듯한데 이것은 SNS의 가식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나는 설령 누군가가 자신의 실패담을 트위터든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직하고 허심탄회한 사람이라고는 여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모두가 볼 것이 뻔한 곳에 그것을 보란 듯이 올렸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바깥으로 썼고 바깥으로 쓰여진 실패담이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그는 그로써 교묘하게 자신의 실패담을 변질시킨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치밀한 가식 행위로 보인다.


이것은 나의 모순이기도 한데 말하자면 나도 여기에 일기를 쓰기 때문이다. 제일 형편없는 짓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혼잣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읽히는 데에 혈안이  사람들로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어쩌면 SNS보다도 못할지 모른다. 가식에 더해서 너절한 가입 절차를 통해 종용되는 근본없는 귀족주의까지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군다나도대체  여기에 쓰는가? 나는 그다지 작가가 아니며 일기 쓰는 것이 필요하고 좋아서   누군가가 어떤 이유에서 이걸 읽는다면 이상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없다. 왜냐하면 나는 바깥으로 쓰지 않았고 그들에게 이것은 난센스, 횡설수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거짓말이다. 비공개인 블로그나 열쇠로 잠글  있는 공책에  수도 있었지만 나는 직접 가입 신청까지  여기다가 버젓이 쓰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중에 노트에  것을 주말에 고쳐서 여기에 옮겨 적는다.  모순이 처음부터 나를 괴롭혔고 계속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면 웃기는 소리일까?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가식은 내가 만들어낸 일기 쓰는 자아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기장은 나에게 대단히 많은 제약을 준다. 엄연히 바깥으로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깥으로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문체와도 직결되며 나아가서는 글쓰기에 대한 나의 태도, 글쓰기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하도록 한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어쨌든 나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천박하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속물근성을 매일 나에게서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카프카는 자신의 일기장이 불태워지기를 바랐을까? 이 말을 믿지만 그는 비범하고 섬 같은 존재였다. 나는 한낱 일반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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