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범 Nov 29. 2020

2020. 11. 23 월

이본의 테스트 결과는 음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론 그건 오류일 수 있고 한 번 더 테스트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다행이다.


미리 아키캐드로 라인 빌라를 만들어 본 게 지금 일을 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빌바오 건물은 다소 복잡하고 이런저런 까다로운 디테일들이 많아 먼저 툴들을 만져보지 않았다면 모델링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내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장난스럽지만 잘 지으면 비트라하우스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다양하게 배울 수 있고 이런 디자인은 어쨌든 만드는 데 재밌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라인 빌라도 어딘가에 짓게 될까? 그러나 이 설계는 아직까지 미완으로 남아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라인 빌라가 있는 라인은 내가 군대에서 2년을 살았던 곳인데 그 이름은 단순히 활주로가 아주 길고 직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졌다고 멋대로 생각한 뒤 내 머릿속에 하나의 개념이 됐다. 끝이 없고 비자연적인 그 장소를 경험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하이젠베르크를 뒤적거리며 전투기의 경로, 행성, 원주, 호와 같은 것들에서 어떤 연결 고리를 찾으려 했었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또 한 번 라인 옆에서 살게 되었는데 두 번째 라인은 기찻길이었다. 처음 그 기숙사 방에 짐을 풀었을 때는 실뱅 쇼메의 벨빌의 세 쌍둥이에 나오는 집을 떠올렸다. 그 집의 티비에는 굴드가 나와 내가 좋아하는 평균율 2번 전주곡을 친다. 비가 오는 밤이면 종종 큰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로 아래의 선로 위를 맨발로 걷는 상상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지를 정해야 했다. 오른쪽으로 가면 스위스, 왼쪽으로 가면 프랑스나 그 외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에 갈 수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라인은 이제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신기한 사실은 지금 내가 출근하는 사무소 건물이 오래된 역사이고 바로 옆에 기찻길이 있다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 창문을 열면 갈대 덤불과 선로가 보인다. 코바흐에는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2량 열차가 아주 가끔씩 늙은 소리를 내면서 지나갈 뿐이지만 그 선로는 내가 빗속에서 맨발로 걷던 선로와 실제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정말로 라인을 따라 나는 이곳에 도착한 듯싶다.


나는 자주 라인에 대해 생각하고 그건 차츰 하나의 길이 된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사유를 길에 비유했는데 어렵고도 멋진 우리가 단순히  위의 수행자가 아닌  자체임을 암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11. 22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