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범 Dec 13. 2020

2020. 12. 12 토

목요일 저녁 엘사와의 대화는 처음으로 건설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멕시코 팀에게 보인 두 번의 프레젠테이션은 H가 도면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로 뻔한 얘기만 반복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막상 디테일을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국 엘사에게 따로 디자인 논의를 하자고 연락했는데 그녀는 금방 줌 링크를 보내왔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우리는 한 시간 반 남짓 모델을 자세히 뜯어보면서 중요한 부분들을 체크했다. 엘사는 내가 제안한 몇 가지의 수정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기존의 컨셉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녀에게 이 프로젝트의 컨셉은 불리언 연산을 비유로 들자면 도형 더하기인 듯했고 (나는 삼각형 타워에서 박공지붕집을 ‘빼서’ 그 통로로 넓은 채광 면적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는 별생각 없이 그래서 빼기는 불가능하다는 식의 그 논리를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어쨌든 이 건물은 그녀의 말대로 ‘더하기’라는 연산을 통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컨셉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추상적인 발상 혹은 이고  어원은  그대로 착안된 것을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도형 더하기라는 다소 단순한 개념은 어느 정도 수학적 사고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추상적이라고는   없고  프로젝트가 진정으로 착안하고자 하는 이데아는 더구나 아닐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멍청이가 순전히 거대한 블록을 쌓기 위해 건축을 한단 말인가) 컨셉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도형 더하기는  그대로 타티아나 빌바오가  건물을 위해 임의적으로 결정한 연산 체계일 뿐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건축 프로젝트가 이런 식으로 컨셉이라는 용어를 오용한다. 엮기니 짜기니 접기니 하는 경박동사들은 사실상 컨셉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컨셉이라면 가령 요리를   단순히 칼로 마구 썰기 위해 혹은 냄비에 펄펄 끓이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것은 어쩌면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스튜디오가 시작되면 교수들은 첫날 대뜸 컨셉이 뭐냐고부터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안하기도 전에 착안된() 것을 어떻게   있단 말인가? 도서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의 컨셉이 (중의적인 의미에서) 도서관이라고 말해야만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젝트는 오로지 그것에 대한 어렴풋한 감으로 시작되었고  안에서 유일하게 (새롭게) 착안되었다고 말할  있는  역시 도서관이라는 개념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형편없는 대답이라도   있는 이유는  지난한 과정이 이미 완수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이 내가 컨셉에 대해   있는 말이다.


이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도형 더하기로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그러한 연산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작가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형 더하기를 컨셉으로 인정한다면 대개 그 말은 도형 더하기가 맹목적으로 규정이 되는 것을 뜻한다. 엘사의 말대로 이제 빼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설사 빼기를 통해 조금 더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규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태도 역시 교육의 문제일지 모른다. 컨셉이 엮기에서 짜기로 바뀌는 경우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엮기에 실패하여 어쩔 수 없이 짜기로 전향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컨셉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함에도 어떻게든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고 변화하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무엇인가가 착안될 수 있단 말인가? 가령 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확실한 어떤 방식과 재료를 가지고 의자를 만든다면 그것은 복제된 것이지 착안된 것이 아니다. 도서관의 경우 그것은 수없이 바뀌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것은 폐허이기도 했고 섬이기도 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나는 단지 어렴풋한 감만을 가지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아주 더디게 전진할 뿐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컨셉의 추상성이 뜻하는 바가 아닌가? 추상적인 것은 쉽게 붙잡히지 않고 계속 우리 손을 빠져나간다. 추상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멀리 떼어냄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컨셉의 의미가 단순한 테크토닉으로 축소됨과 동시에 부당하게 불변적이도록 고정되어버림으로써 수많은 건물들이 특정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피상적인 조형물로 전락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꼭 빌바오 프로젝트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분명 이 건물은 다소 조형적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컨셉이야 어떻든 지을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12. 8 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