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무리한 도면들은 얼추 인허가용 도서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기본적인 물량 산출이 가능한 수준이다. 건축주와의 협의 후 다시 이런저런 수정이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 내 수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오십 대 일로 표현되었다. 아무런 경험도 없는 상태로 일을 맡아 어찌어찌 이 한 세트를 완성시키기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삼 주간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며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종종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부터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무식자의 가장 큰 무지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계속 질문하고 노하우를 쌓는 것뿐이다. 때문에 내가 유용해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모르는 것을 파악하고 게걸스럽게 배워야만 한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며 매 순간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연휴 전 이번 자료를 준비하여 건축주에게 넘기는 것을 나는 내심 H에게 내 업무 수행 능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첫 시험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인쇄된 도면들을 검토하면서 그는 설계에 관련된 몇 개의 간단한 질문만 했을 뿐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헤더에 내 이름을 쓰라고 했다. 압박감으로 인해 심신이 위축되어 있던 상황에서 일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만 하면 될 것이라고 자위했다. 이것으로 빌바오는 지어진다면 공식적으로 내 첫 건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