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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Dec 26. 2020

2020. 12. 24 목

함부르크의 H 가족을 사흘간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들을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사실 내 은밀한 동기는 뤼벡의 바닷가에 가는 것이다.


C와 통화했다. 그는 내년에 시간이 생기면 생각만 해오던 개인 작업을 좀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 기분을 잘 이해한다. 일기 예보상 눈이 온다고 했지만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어둠 속에서 젖은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잡생각이 사라지는 듯했다. 다들 조용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다섯 명 이상은 모일 수 없는 이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무료한 상태로  의욕이 없다가 거의  열시가 돼서야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때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의식은 새우 파스타와 모스카토로 이루어진 단출하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것이다. 비로소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가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것인지는   없다. 요리와 음식은 모든 축제의 본질이라고 말해야  것이다. 포만감을 느끼며 소파에 누워 60년대 독일 범죄 영화를 보고 있는데 담요 밑으로 뭔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가 사라졌다. 그건 약간  앵두만  크기의 노란목들쥐였고 (검색해서 찾아본 사진과 똑같이 목둘레에 노란 털이  있었다) 치즈와 빵가루를 뿌려주니 조심스럽게 기어 나와 오물오물  먹었다. 발코니 문을 열어뒀을  추위를 피해 들어온 듯했다. 어쩌면 지붕 속에서 나는 찾을  없는 통로를 통해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빵가루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위로 바구니를 덮어  상자로 옮겼는데 무서운지 구석에서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다가  종지에 담긴 물을 재빠르게 할짝댔다.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키워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얼어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정원에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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