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수영

by 홍석범






우박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L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받아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막 나갈 참이라고 했고 나는 사방에 떨어져 있는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 모르는 벌레들을 잡다가 잠에서 깼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 장마 중 하루였고 우리는 새벽에 집에서 반팔과 수영복만 입은 채로 맞은편 문화센터의 수영장으로 향했다. 탁자가 몇 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수영장이 들여다보이는 그 건물의 지하 중정은 우리의 아지트였는데 그 며칠 전 우연히 그곳에서 수영장으로 바로 통하는 비상문의 보안 센서가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렇게 우리는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불이 꺼진 수영장에서 공포와 희열을 느끼며 몇 시간 동안이나 수영이라기보다는 디오니소스의 춤에 가까운 물장구를 치다가 완전히 녹초가 되었을 때 물기도 닦지 않고 그대로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201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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