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시간과 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스티븐슨이 문학사이자 시인이었던 프랑수아 비용에 대해 쓴 짧은 이야기로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축축한 눈썹을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대체 이 많은 눈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의아해했다.」 이어 스티븐슨은 가난하고 타락한 비용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한다. 「천사들이 털갈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뒤에 물론 나는 너무 자주 인용되어 다소간 시성을 잃은 듯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첫 문장을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는데, 내게 놀라움을 주는 것은 야스나리가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고 쓴 그다음 문장이다. 이는 시라는 것, 즉 이를테면 눈이라는 자연현상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언급하기만 함으로써 시에 기여하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방랑하던 내 생각은 이내 치명적으로 정교하고 반생명적으로 무한히 독창적인 눈의 구조가 감추고 있는 죽음이라는 비밀에 다다른다. 이렇게 죽음의 결정을 들여다보면서도 토마스 만은 자신의 작품을 끝까지 썼다.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죽음에게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점점 황량한 침묵의 세계, 어마어마한 세계, 아무것도 보증해 주지 않는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Westerstetten, Germany
2019.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