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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r 27. 2021

2021. 3. 26 금

가끔씩 일기의 문체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직까지도 내가 미숙하다는 뜻일까? 나는 아마도 쭉 미숙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약함과 어떤 관계가 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시안 임비스에서 땅콩소스를 뿌린 오리고기와 밥을 포장해서 광장 벤치에 앉아 먹었다. 기온은 저번 주보다 거의 십 도 이상 올라갔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날씨였다. 그런 행위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뒤에는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한 듯한 기분으로 그곳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난 지금 차분하면서도 약간 몽롱한 상태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 것은 긴장이 조금 풀린 탓일 수도 있다. 어제 SH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나는 차근차근 준비해 온 내 인생의 다음 단계가 곧 시작된다는 다소 몽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시에 코바흐에서의 반년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게 됐는데 그건 단순히 빌바오나 카프리치오와 같은 프로젝트의 경과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내가 터득한 것들, 경험들, 기억들을 어떻게 보자기를 묶는 것처럼 한 지점으로 모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나는 이것에 대해 이미 꽤 오래전에, 어쩌면 거의 시작과 동시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에게는 오 주간의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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