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홀로 보내는 마지막 주말. 한 주간 조금씩 이사를 위한 여러 준비를 했다. 회사에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지난주에 아나와 보리스의 허가도서를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런 부담이 없다. 별 소득 없이 빌바오의 디테일에 관련된 레퍼런스를 찾아보거나 다시 그릴 필요가 없거나 어차피 나중에 누군가가 다시 그려야 될 세세한 부분들을 수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최소한의 업무만을 하고 있다.
새 집 계약을 하고 보증금을 이체했다. 고용청에서는 4년 취업 허가가 났는데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기 위해 일단 이곳 이민청을 통해 11월까지 유효한 임시 허가증을 받았다. 베를린 이민청에는 정식으로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체류 허가증을 신청해놓은 상태고 건축사협회 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에 회사와 주소지 변경을 통보했다. 다행히 거주지 등록을 위해서는 이사 다음 날 아침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준비로 미켈라가 와 있던 참에 미리 차도 예약했는데, 그녀는 어제 베를린으로 돌아갔지만 이사를 도와주러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온다. 그녀는 좋은 친구다.
이제 남은 일은 다음 한 주 동안 짐을 싸고 그 짐을 옮기는 것뿐이다. 퇴근 후 잠시 집에 놀러 온 미켈라에게 내내 그 준비에 정신을 몰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길에서 주운 새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피우고 있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 원래 그런 건 불가능해.
코바흐에서의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며칠 전까지도 눈이 왔고 이곳은 거의 반년 내내 그 속에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서처럼 고독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여러 이유에서 이곳을 찾았으며 더 많은 고독을 느낄수록 좋았다. 그렇기에 지금 그것에 대해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씩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삼 년보다 이곳에서의 반년이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나는 삼 년보다 반년새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