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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n 30. 2021

2021. 6. 29 화

CPT가 끝났고 오늘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갖는다. CPT는 SH에서 내 첫 일이라는 점, 내 최초 건축 공모전이라는 점, 엄청난 규모라는 점 외에도 존경할 만한 새 동료들을 만났다는 점과 팀원으로서 내 재량을 어느 정도 스스로 신뢰할 수 있게 해 준 계기라는 점에서 기억에 남을 것이다.



I

우리가 CPT를 설계한 방식은 나에게 생소하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쓰면 어쨌든 그 요상한 분업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테살로니키의 중심에 위치한 프로젝트는 하나의 면적이 거의 도시 한 블록 크기에 맞먹는 세 개의 박람회장과 동일한 크기의 (다소간의 귀티가 요구되는) 의회장, 비즈니스 센터와 호텔, 그리고 이 모두를 둘러싸고 있는 공원을 포함하는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 압도적인 규모를 다루는 나름의 전략으로 그레고리, 포티오스와 미나는 각각 한 건물씩을 분담해 따로 또 같이 설계하기 시작했다. 면적과 코어, 동선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힌 시점에서 내가 팀에 합류했고 첫 두 주간 내 작업은 라이노와 마이크로스테이션의 튜토리얼 외에 전체 사이트 입면과 섹션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이는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초반에 분위기를 살피고 그때까지 진행된 설계 내용을 파악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설계 방식을 생각하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모든 건물들을 관통하는 공중의 투명한 복도 ‘바사리’가 있었지만 프로젝트의 이미지라기에는 충분히 강력하고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고 있던 차에 톰이 자신이 스케치한 둥글둥글한 지붕들을 테스트해 주기를 부탁했고 그레고리는 나에게 그 일을 일임했다. 나는 그 지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완만한 곡률을 다듬고 그 아래의 관대한 그늘들을 상상하며 종종 내 비마나를 떠올렸는데 지붕이 완성된 뒤 (다행히도) 사람들이 그것을 좋게 평가해 주었을 때 만족스러워하던 그레고리가 역시 톰은 사람을 볼 줄 안다며 너에게 지붕을 주라고 말한 건 그였다고 슬쩍 알려주었기 때문에 혹시 그가 내 포트폴리오에서 본 뒤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그 지붕들에는 분명 일종의 숭고미가 있었다. 심지어 마티아스는 그것들이 더욱 커지기를 원했고 결국 우리는 지정된 지붕선을 훨씬 넘어 기존의 박물관 위까지 덮게 되었는데 톰은 그것들이 구름이라며 좋아했다. 포티오스는 다소 시니컬하게 브리프를 개무시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비판했지만 나는 구름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주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건축에 대한 진술 중 하나는 페레가 건축은 아름다운 덮개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덮개를 항상 그늘로 이해했고 포티오스 마저도 우리가 제안하는 이 그늘들이 그리스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지붕이 어느 정도 결정되었을 때 나는 팀에서 내 역할이 조금 확실해졌다고 느꼈다. 그레고리는 수많은 협력 업체들과의 의견 조율에 정신이 없었고 포티오스는 비즈니스 센터의 호텔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계속 평면만 그려온 미나가 그레고리의 의회장 평면까지 떠맡게 되면서 나는 실제로 보여질 공간에 대한 시각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레고리와 함께 렌더 회사에 보낼 주요 뷰들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박람회장과 공원의 뷰와 의회장 로비의 뷰를 퍼스펙티브 상에서 디자인했는데 재밌게도 그 결과물은 평면에 생각지 못한 영향을 끼쳤고 이 지그재그의 벽들은 나중에 공원을 반사해서 지붕을 정말로 구름으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이건 어쨌든 새로운 시도였고 나는 잠시 언제나 퍼스펙티브에서 설계했다는 바라간을 떠올렸지만 이런 트릭과 그의 예술은 감히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지붕이 전체를 묶어주며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따라 파사드가 정리되어야 했고 내가 이 작업까지 맡은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재밌고 눈에 띄는 파트의 디자인을 혼자 다 하고 있다는 약간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매니저로서 모든 행정적인 일들을 관리하고 있던 그레고리는 차츰 설계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소 실용적인 대형 홀들의 평면만 그린 미나는 분명 욕구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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