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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l 02. 2021

2021. 7. 1 목

계속 오는 . 집을 나서며  오는 베를린에 대해 포티오스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지금 카페의 옆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일행에게 자신이 시킨 아메리카노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건 에스프레소 투샷에 뜨거운 물을 탄 거야. 그 말을 들으며 난 바그다드 카페의 노란색 커피 보온병을 떠올린다. 브라운 워터!



III

톰과 나는 다소 천박하게 표현해서 무조건 이뻐야 한다는 비슷한 가치 판단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뻐야 한다와 이쁘면 된다는 분명 다른 얘기다.



포티오스는 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약쟁이인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매 순간 지치지도 않고 저렇게 날카로울 수 있겠어? 그런데 그는 정말 그래. 그것도 20년째.



월요일 아침에 이틀간 붙잡고 있던 최종 면적 체크를 끝내고 (모든 숫자들이 들어맞는 희열!) 나는 백신을 맞으러 테겔에 다녀왔다. 아시아가 말했듯 그건 분명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게다가 나는 테겔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는 문을 닫은 그곳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찐득한 더위. 사무실로 돌아와 마침 나와 있던 다른 팀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7시쯤 테라스에서 마감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를 가졌다. 실물은 보지도 못한 7000유로짜리 모형과 10장의 A0 패널은 약간의 해프닝 끝에 무사히 그리스로 떠났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톰, 앤드류와 포티오스의 대화는 지적이고 즐거운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거의 끼어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고딕과 르네상스, 성당과 아이덴티티, 흑사병과 초콜릿으로서의 신, SH에 대한 하룬 파로키의 영화와 장 누벨, 벤야민의 희귀한 책을 손에 넣는 방법들, 건축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두서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포티오스의 건물의 안과 밖에 대한 말에 어떤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중간에 생각이 곧 흐지부지 흩어졌다. 나는 아마도 헤이덕의 인클로져스에 대해 무언가를 떠올렸던 것 같다. 특별히 아름다웠던 건 포티가 지금 우리 모두가 이 탁자 위에 떠 있는 무언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 것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는 그것이 바로 공간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에서 톰은 자신이 마티아스와 언젠가 가졌던 대화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에게 말을 하고 그 역시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해. 그러나 우리 둘 모두는 우리들의 말이 향하고 있는 제3의 장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그렇지만 그렇게 그 대화는 점점 그 미지의 장소로 우리를 끌고 가. 앤드류는 그것이 건축가의 프레디커먼트라고 했고 또한 마티아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의 집을 설계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라고도 했다. 나는 이 모든 말들을 들으며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도 어떤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둘 모두는 아마 나의 무지에서 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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