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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l 04. 2021

2021. 7. 2 금

그레고리는 눈매와 정신이 날카롭지만 음식을 줄줄 흘린다거나 소매에 펜 자국을 묻히고 다니는 등 의외의 허당기가 있다.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는 다만 본인의 일에 온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그렇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는 종종 로봇같이 말하는데 그 어투는 대단히 사무적인 방식으로 유창해서 사람을 웃기게 한다. 내가 이런 나의 관찰 내용들을 얘기해 주자 그는 자신에 대해 쓰기 위한 캐릭터 분석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노이쾰른의 어딘가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앉아 있다가 운하 쪽으로 꽤 긴 거리를 걸었다. 그는 아주 빠르게 걷기 때문에 내가 계속 뒤처진 상태로. 그의 제롬이나 리로이, 데번과 같은 친구들에 대해 내가 마치 책에 나오는 인물들 같군. 제롬이나 리로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어 라고 말하자 그는 제롬이 프랑스식 이름인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강둑에 걸터앉아 미지근한 햇살을 받으며 더러운 물에 반사되는 빛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보트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레고리 가만히 있다가 불쑥불쑥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지껄였다. 저기 꾀죄죄한 백조가 있군 이라든지  죽은 금붕어는 누군가가 변기에 버린  틀림없어 하는 식으로. 나는 말이 없을 것처럼 생긴 그가 조잘대는 이야기들이 재밌어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는 건너편 언덕에서 피자를 먹었던 얘기나 보트를 타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얘기 등을 했다. 나는 지금 니가 했던 질문에 우회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거야. 그가 말했다.



바빌론 극장에서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메트로폴리스를 본 건 정말이지 근사한 경험이었다. 90년 전에 지어진 극장에서 9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90년 전의 방식으로 보면서 나는 1920년대 사교계 인사가 된 듯한 낭만적인 기분을 느꼈다. 희한하게도 실제 오페라나 발레 등의 공연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으며 처음 화면이 나오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을 때는 약간 장엄한 기분에 사로잡혀 닭살이 돋기도 했다. 그런 노스탈지아! 진실성이라니! 늦은 밤 흥분한 군중 사이에 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극장 문을 나서며 나는 무성영화가 최첨단 기술로 촬영된 어떤 현대 영화보다도 강력하며 훨씬 오래 전승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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