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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pr 02. 2022

2022. 4. 1 금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치즈케이크를 먹으려 한다. 아이는 작은 포크로 자신의 반대쪽으로 향해 있는 케이크 조각의 뾰족한 끝부분을 공략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어딘가 불완전하고 그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미숙한 포크질에는 표적을 겨냥하는 의지 혹은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아이는 칠칠치 못한 동작으로 케이크의 앞부분을 약간 뭉개 놓기만 했을 뿐 제대로 뜨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는 첫 번째 시도만큼이나 미미하고 이상하게도 실패를 통해 개선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포크에 묻은 크림을 애매하게 핥아먹은 뒤 다시 그것을 케이크에 갖다 대지만 그 끝은 이미 뭉개진 부분을 더 작은 조각들로 부서뜨린다. 이런 행위의 서투름이 정작 아이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더 정확하게 아이는 그것이 서투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가? 아이는 포크의 원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그것을 다시 대충 쑤셔 넣고 희한하게도 그걸 바깥쪽으로 밀어 포크 머리의 볼록한 부분에 붙은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포크를 그대로 가로로 뉜 채로 아이는 케이크가 붙은 부분을 입 쪽으로 돌리지 않고 그냥 오목한 부분부터 입속으로 집어넣었는데 입을 충분히 벌리지 않아 결국 위태위태하던 반대쪽의 조각은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흥미로움과 약간의 경멸이 섞인 마음으로 그걸 지켜보던 나는 원래 저 나이대의 아이들이 이 정도로 미숙한지 의아했다. 씹는 모습도 다소 어색한데 자꾸 앞니를 만지는 것을 보니 이가 곧 빠질 모양이다. 어찌어찌 들어간 케이크 조각은 흔들리는 이 사이로 짓이겨져 침과 함께 입술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런 추한 모습이 부모 눈에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겠지. 유독 엄마가 과한 율동을 섞어 말하는 걸 보면 아이의 기본적인 이해력이 좀 모자란 것 같기도 하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이유는 수술 자국을 가리기 위함일까?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될 것이고 나는 마음 편히 집에 갈 수 있다. 즉 그 포크질은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고. 정상인이라면 그런 포크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왜 이렇게까지 그것을 정당화해야 하는가? 필연적이지 않은 미숙함, 무관심에서 나오는 미숙함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하고 비도덕적이다. 모든 인간 행위는 숙련을 통해 고귀해지고 미숙함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타파된다. 이를 통해 고조되는 것은 우리의 미의식이다. 누구나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을 원한다. 누구나 목적의식에 부합하고 정신과 합치되는 것을 원한다. 인간의 의지가 유연하고 효율적인 행동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것은 매 순간 새롭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진귀함에 놀라는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에서 크리스토프 왈츠의 절제되고 군더더기 없는 슈트루델 신을 떠올려보라. 그 포크질에 문명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이미 공학성을 넘어 관능적인 예술의 일부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그러나 앞니 흔들리는 여자아이가 치즈케이크를 어떻게 먹는지 알게 뭔가? 그 무시될만한 작은 실수들을 하나하나 고집스럽게 나열하며 스스로의 불행을 배가시키는 꼬장꼬장한 한량 외에 도대체 누가 그 포크질에, 아니 세상 모든 포크질에 관심이나 있겠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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