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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y 05. 2022

2022. 5. 4 수

뉘른베르크에서 돌아오는 기차는 넓고 쾌적했다. 이걸  안에서 썼다면 좋았을 텐데. 유채꽃밭이 점점 늘어났고 지평선이 나무들에 가려져 전봇대 다섯 개가 지나가는 순간 동안 밖은 거대한 노란 강처럼 보였다.  강을 거슬러 지금 떠올리는 것은 남색이다. 바다가 아닌 십자가 모양의  예수상이 걸려 있던 어두운 방의 벽이 남색이었다. 금이  고목으로   인물들은 쪼그라든 모습으로 귤색 빛을 받으며 약간 슬픈 얼굴을 하고, 그러나 고통의 흔적 없이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구본이 있는데  위에 칠해진 바다는 청록색이다.  진귀하지만 생각보다 감동적이지는 않은 물건은 우리가 지구를 묘사할  있었던 유일한 이유가 천국을  위에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던 스트라보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칼비노는 베니스의 수도사 코로넬리가 만든 — 지름이 12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건축했다고 쓰는 것이 바람직한 — 지구본 앞에 섰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을 인용했는데 과학적이기 때문에 더욱 시적인  표현은 내게 지구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때때로 감동적인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베하임의 청록색 대양은 점점 작고 네모나져 오르페우스의 발밑에 있던 빨간색 천이 된다.   위에는 먼저 에우리디케의 가녀린 발이 있었고 지하세계의  대장장이들은 이들  시신을 끌고   차례씩 극의 처음과 끝에 무대를 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이 수미쌍관이라고 말하는  같고 아마도 바로  이유에서  반복에는 어딘가 대단히 필연적이고 숭고한 면이 있다. 무대 오른쪽에는 앙상하게 마른  나무가 눕혀져 있는데  나무는 페그니츠강가에서  수양버들과 자못 대조적이다. 늘어진 가지들이 수면에 닿을    했던 버드나무는 연두와 반짝거리는 빛으로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다소 억지스럽지만 연두색 속에서 보라색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색은  다리 끝에 발굽이 있는 악마를 밟고 , 날개가 하나뿐인 천사가 들고 있던 불로  창의 색이었다. 나머지 부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체로서  물건은 화려하게 장식된 시계나 서랍장 같은 것이었을  있다.  작은 천사 혹은 기사는 길고 보랏빛인 별똥별의 꼬리 같은 것을 손에 쥐고 그 꼭대기에 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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