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범 Jun 05. 2022

2022. 6. 4 토

쓰다 말았던 몇 개의 일기들을 몰아서 마저 쓰고 있다. 이 기회에 따로 페이지를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메모해두었던 암스테르담의 도시에 대한 몇 가지를 적어둬야겠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가로수들이 넓건 좁건 거의 모든 길들을 따라 늘어서 있다. 특히 트램을 타고 지나칠 때 좁고 단정한 건물들 사이로 매번 풍부한 초록을 보는 것은 어떤 장엄한 인상을 남겼다. 벽돌 건물들은 다양하면서도 정갈한데 대체적으로 운하를 따라 선 것들은 더 오래되었고 중간중간 뒤틀린 공간 사이에 짜 맞춘 문틀과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런 디테일이 지저분하다기보다는 꼼꼼한 패치워크 같다. 같은 운하 도시인 베니스와 암스테르담을 비교하면 선자에서는 모든 집들이 짠기를 머금고 있고 조금씩 무너져 있지만 후자의 건물들은 견고하고 차갑다. 그것은 돌이 주는 인상이고 나는 그것을 산레담의 그림들에서 여러 차례 다시 발견했다. 그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더치 마스터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는가! 그 다소 압도적인 경험은 한동안 잊고 지내던 시각적 욕구를 환기시킴과 동시에 곧바로 해소시켜 버렸다. 언젠가 이 모든 시각적 기억들은 종유석 같은 하나의 기둥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고흐는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따라 걷다가 느릅나무들을 봤고 렘브란트의 에칭을 떠올렸다고 동생에게 썼다. 야콥 마리스가 그보다 2년 전 그린, 어쩌면 고흐가 렘브란트를 떠올렸던 (편지와 그림 제목에 같은 지명이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장소일지 모르는 풍경화가 국립박물관 어딘가에 걸려 있다. 느릅나무, 운하 이런 것들은 전부 그림 속에 있거나 어떤 도시를 이루고 있다. 나중에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아예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거리의 벤치들과 햇살과 나무들을 흔드는 바람 같은 흐릿하면서도 생생한 것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 가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왜 트램 칸 안에 반달 모양의 안내 데스크가 있었나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 5. 28 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