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범 Oct 08. 2022

런던 일기

10 8 오전 0 26.  20  6월의 어느  나는 작은 타운 콜체스터의 워터스톤즈 앞에 바글바글 모인 동네 애들  하나였다. 높은 아치형 쇼윈도 너머로 금색 벽돌들처럼 가지런히 쌓여 있는 책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기억은  어린 시절을 체로 거른다면 비유의 모래 사이에서 드러날 반짝거리고 단단한 진실의 조각  하나이다.  근사한 양장본을 드디어 손에 들었을  느꼈던 묵직함은 (어린 나는  무게가 정당하다고 느꼈다)  후로 오랫동안 이어질 책에 대한  탐욕을 일깨워  원천적인 충격이었음이 분명하다. 책이 두껍고 무거울수록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 아닌가! (스테픈 프라이는 우스갯소리로  책을 냉장고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역시나 불사조 기사단의 재미는  묵직함이 보증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삼성아파트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조금은 빛바랜  책의 표지를 지금 다시 펼친다면 내가 이른 아침 워터스톤스 앞에  있던 그날의 날짜를 확인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리 포터가  유년기의 중대한 부분그것이  어린 영혼(정신적 존재라는 의미로 이렇게   있다면) 불가역적인 핵을 형성한 중요한 문학적 사건이었다는 뜻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그것을 읽던 시기가 동시에 그것이 쓰여지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있는 사실을 나는 일종의 특권이라고 느낀다. 단지 7학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일곱 권의 책을 바라보는 시점에 차이가 있다면 이제 나는 독자로서  내용을 읽는 즐거움이 아닌 작가로서  내용을 쓰는 즐거움을 생각한다는 것뿐이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 해리는 자신의 생일날 불쑥 찾아온 우산  거인에 의해, 나는 기차 안에서  이야기를 처음  내려가기 시작한 무명의 작가에 의해 새로운 세계로 (세인트 헬레나 스쿨에  입학한 상태이기도 했기 때문에  ‘세계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도된 비슷한 처지우리는 실제로 나이도 같았다였다. 그리고 이제  동류의 애정을 향수 통해서만 떠올릴  있게  어른으로 성장한 나는 그때 마음 졸이며 읽어 내려간 페이지들을 다시 들춰보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롤링 여사는 이걸 쓰며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건 확실히 독자가 아닌 작가로서의 부러움이다. 이렇게 작가인 척을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이 역할극을 이어가 보자. 작가의 목표는 미지의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 부러움은 어떤 세계의 흥미진진함 자체보다는 그 세계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기술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마법 이외의 어떤 근본적인 것이 그 세계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독자가 아닌 작가의 역할에 충실하여 판단해 보자면, 그 마법의 세계가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의 주문이 아닌 뒷면 때문일 것이다. 롤링은 그녀의 책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대 위 세트처럼 즉흥적이고 짜깁기식으로 발명된 일화들로 해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속적이고 뒷면이 존재하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귀속시켰다. 아직까지도 확장되고 있는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의 이름이 Wizarding World임을 기억하자. 그런데 이 전략의 교묘함은 바로 이 세계의 뒷면이 다름 아닌 우리의 현실 세계라는 데 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작가는 런던의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에 마법 세계로 들어가는 문들을 슬쩍 그려 넣은 뒤 그 세계의 중력을 실제 우리 세계의 중력에 결속시킴으로써 자신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간단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를 통해 그녀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마법 세계를 우리의 현실 세계에 편입시킬 수 있었고 일단 이 중력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 쓰고 새롭게 첨가할 수 있었다. 난센스로 용해돼버리지 않도록 판타지를 대지에 (혹은 독자에) 붙잡아주는 이야기의 중력이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마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건 정신쇠약이다. 그러나 마법을 쓰고 싶은 작가라면 더더욱 중력에 집착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아무런 법칙이 없는 세계는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링은 이미 그녀가 알고 있던 검증된 중력—이 지구의 중력—을 차용하는 대신 현실 세계의 보이지 않는 틈 사이로만 마법을 써넣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를 전부 머글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잠시 꺼내 그 순수했던 영혼의 몰입을 이렇게 슈도 작가의 펜으로 해부해야 하는 이유는 리브스덴의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서 느꼈던 총체적 실망감을 근거 짓기 위해서다. 그 경험은 책의 방향과 반대되는 것, 즉 언뜻 완전한 듯 보였던 세계가 사실은 무대 위 세트들의 엉성한 콜라주임을 여지없이 확인시켜주는 것이었고 그 짓다만 세계의 뒷면은 온갖 건축 자재들과 무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허공일 뿐임을 보면서 나는 그런 적나라한 방식의 비은폐가 대중들에게 보란 듯이 향유되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사물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정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사물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빛을 잃은 채 세트의 일개 소품으로 전락하여 먼지가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충족된 환상보다는 서커스가 지나가고 난 뒤의 허전함 혹은 씁쓸함 같은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어쨌든 그 거대한 공장 같은 스튜디오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런 감정들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그 모든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방문한 내 숨겨진 의도는 사실 홀로 그 장소의 아이러니에 대항하는, 그 비은폐에 대항하는, 그 대중들의 천박함에 대항하는 고독한 싸움에 있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비밀이 까발려져 산산조각 난 세계를 다시 재건하기 위한 시도. 내가 그 소품들의 산더미에서 건지고자 했던 건 단 한 장의 사진이다. 이때 나는 몇 년 전 텔아비브에서 봤던 히로시 스기모토의 디오라마 연작을 떠올리고 있었음을 적어둔다. 이 집요한 일루셔니스트의 방식으로 이제 (사진)작가는 글이 아닌 렌즈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묘사함으로써가 아닌 보이는 부분을 삭제시킴으로써 세계를 완성시켜야 한다. 그렇게 대중이 삭제되고, 조명이 삭제되고, 어색하게 끝나는 벽과 천장의 모서리가 삭제된다. 마네킹들과 사인들과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설계된 기계들이 삭제된다. 그리고 그 기계에 연결된 이 현실 세계가 삭제된다. 이 작업이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쩌면 순수한 운에 의해 우리는 단 한 장의 진짜 마법을 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진은 리브스덴의 영화 스튜디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파편들 속에서 가능했을, 혹은 앞으로 가능할 수많은 세계들 중 하나의 완전한 모습을, 찰나의 순간 동안 완전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셔터를 누른 직후 다시 짓다만 벽과 천장의 어색한 테두리가 눈에 들어온다. 밤하늘의 별들이 아닌 어두운 공장의 조명들이 마네킹들을 싸구려 빛깔로 비추고 그 사이에서는 기념품 망토를 걸친 머글들이 플라스틱 지팡이를 흔들며 분주히 사진을 찍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