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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r 20. 2023

2023. 3. 19 일

빗소리를 음악 삼아 플루서의 가로등에 대한 단상을 읽는다. 독일어로 읽으니 속도는 느리지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어제는 대단히 활동적이었던 반면 오늘은 게으르고 휴지상태다. 그나마 한 것은 점심으로 미트볼과 양배추를 넣고 스튜를 만든 것인데 그걸 먹는 동안 잠깐 보려 했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를 여섯시까지 봤다. 외국의 누군가가 케이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자주 듣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지만 이런 프로를 보면 한국 아이돌들의 능력과 스타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는 그런 형태의 스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얘기하다 주류인 팝 컬처가 자국 것인 경우는 한국(과 아마도 미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제삼자인 K가 말했을 때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는 막연하게 젊은 세대가 자기들의 문화를 주류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반대로 내가 얼마나 진보된 팝 컬처에 둘러싸여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랐는지를 깨닫게 한다. 플루서의 말대로 나는 이미 그 일부로서 그 특정한 미의식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갖출 수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에게 밤의 가로등처럼 느껴진다. 환상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 빛은 꾸며지고 순간적인 것이라고 한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여전히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비춘다.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이기 위해 빨래를 개고 모자를 눌러 쓴 뒤 지는 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카페를 가기엔 이상한 시간이지만 갑자기 케이크가 먹고 싶다. 케이크를 먹기엔 더욱 이상한 시간이다. 망고 젤리가 올라간 마지판 한 조각과 차가운 카푸치노. 그리고 주머니에서 테니슨을 꺼내 읽는데 아까 그 빛나는 소년들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And moving up from high to higher,

Becomes on Fortune’s crowning slope

The pillar of a people’s hope,
The centre of a world’s desire;


Yet feels, as in a pensive dream,

When all his active powers are still,

A distant dearness in the hill,
A secret sweetness in the 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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