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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r 27. 2023

2023. 3. 25 토

아우렐의 초대로 데이빗 보위가 살았다는 그의 새 플랫에서 그의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아우렐을 본 건 일 년 만이다. 냉장고에 있던 아무 와인 한 병과 언젠가 나도 한두 번 입었던 그의 후드를 챙겼다. 모든 결정이 즉흥적이었지만 그의 학교 친구들인 말테나 타르칸을 알게 된 건 즐거운 일이다. 정작 아우렐과는 인사치레 정도의 몇 마디만 나눈 게 전부다. 새벽 세시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우리가 떠날 때 그는 봉투의 출처를 물었고 나는 프로방스의 한 과자점이라고 대답했다. 그 바로 아래층에 사는 타르칸의 집에 의자들을 옮겨놓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 그에게 다시 올라가도 되냐고 문자를 보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스라고 했다. 계단 위에 살짝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타르칸의 방은 아우렐의 방과는 구조가 조금 다른데 왠지 더 높고 우아하다. 그의 목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술게임을 할 때 아우렐은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고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반면 시몬은 내가 향수를 쓰지 않는 것을 항상 의아해하며 내게서 새 신발이 들어 있는 박스 냄새가 난다고 말했었다. 잠깐 설잠이 들었다가 머리가 어지럽고 명치끝이 조여 깼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다시 잠이 오질 않았다. 타르칸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여덟시쯤 나왔는데 길은 여전히 축축하고 습한 아침 공기는 어딘가 불쾌하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전 나무 옆에 서서 헛구역질을 몇 번 했다. 집에 도착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버터와 꿀을 바른 토스트에 꿀물을 먹으니 그제야 속이 조금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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