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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r 30. 2023

2023. 3. 29 수

이주 전부터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어쨌든 그것이 독립적인 사고, 장식적인 사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파사드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과 비슷하다. 요즘 그런 내 순수주의적 태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데 그것이 편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옳은 방향이라고 계속 믿는다. 끊임없이 연장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것. 연장적으로 설계할 것. 이러한 노력이 자체적으로 내 안의 편견들을 조금씩 교정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LP2부터 꾸준히 다져오고 있다. 표를 익히고 그 각각의 항목을 기하학적으로 분배하는 데 첫 3개월이 걸렸고 그 기하학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정제하는 데 10개월이 걸렸다. 그다음 단계인 지금은 단면과 퍼스펙티브로 사고한다. 아주 예전에 내 바르셀로나 프로젝트를 놓고 노장의 마사노리 교수가 평면은 프로그램, 섹션은 공간이라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해 놀랐던 적이 있는데 우리의 좌표계를 떠올려보면 사실 당연한 이 사실을 이제서야 체감하게 됐다고 적어둬야 한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할 순 없지만 기본이 되는 것은 평면이고 이 기본이 가장 엄격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코르뷔지에는 썼다. 내게는 작년 한 해가 그런 훈련이었다.

최근에 투시도를 끄적거리다 바라간은 투시도로만 설계했다는 전설적인 사실을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비로소 그런 사고방식을 익히게 된 것인지 으쓱한 적이 있다. 석사 마지막 작업을 제외하고는 학생 때 투시도를 그린 기억이 없는데 그보다 일정한 법칙이 있는 투상도를 항상 선호한 데는 헤이덕이나 스콜라리의 영향이 컸다. 요즘 같이 작업하고 있는 마리아는 아이패드에 볼드한 라인으로 간단한 투시도를 쓱쓱 스케치한 뒤 자신의 핀터레스트 팔레트에서 마음에 드는 질감이나 색을 이것저것 긁어와 금방 근사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표현 방식은 사고방식의 연장이라는 믿음과 그 표현에 대한 다소 형이상학적인 내 취향은 이런 즉각적이고 조합적인 것에 대한 극도의 반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공간적 본질에 대해 어떤 질문이나 이견을 제시할 때 마리아는 종종 그것은 ‘건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나는 여기에 어울리는 브라스로 된 예쁜 문 없을까? 같은 멍청한 질문을 그녀에게 던지며 속으로 이건 부끄러움도 없이 너무 카탈로그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제품이자 조합으로밖에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인테리어적 사고방식은 결국 건축적인 사고방식의 가장 연장된 끝으로서 일종의 시 번역과 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마리아와의 이 정반의 혹은 연장의 작업이 사고와 시야의 폭을 넓혀주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인테리어의 전반적인 그림을 완성해야 되는 기간은 5월까지 3개월이다. 그 뒤에는 지금 내 소관인 EG에 한정하여 5개월간 그 실제의 구성품들을 일대일에서 일대오십의 스케일로 정의하게 될 것이다. 이 LP5가 마무리되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끝난다.  

이걸 쓰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프로그램-공간-사물로 나아가는 설계(사고)의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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