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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pr 08. 2023

2023. 4. 7 금

부활절 기간이라 동네가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독일인들이 집으로 내려간 대신 그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득실거린다. 거리 위에도, 버스 위에도, 심지어 배 위에도. 짧은 외출 중 한기 드는 지저분한 날씨와 사람들로 인해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 상태로 필하모니에서 요한 수난곡을 듣다.


합창에 중화되어 파도바 세례당의 프레스코화를 떠올렸다. 지우스토 데 메나부오이는 파라다이스를 예수 주위에 밀집해 있는 천상의 수행자들로, 동심원을 이루며 정렬한 그들의 광배 무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합창을 그린다면 그런 그림일 것이다. 쿠폴라의 대열 속 기하학의 군중, 혹은 신성한 음악 속 합창의 군중뿐이라면 세계는 얼마나 덜 피로할까. 그러나 실러가 지적했듯 합창은 관념적 영역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인은 합창의 존재에 중화되었다고 느꼈다고 썼다. 개개인 간의 간극은 동일성의 힘에 압도되는 것이다. 그리고 합창만큼 강력한 동일성의 힘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가 구태여 문화인이라고 명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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