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 이번 발표 말아먹으면 어떡하지
> 내가 잘할 수 있을까
> 실수 하나 용납할 수 없는데
> 남들보다 못해 '보이면' 밉'보일거야'
> 고작 그정도 계획 틀어졌다고 엄청 스트레스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곤 하는 '완벽주의'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살며, 자그마한 일에도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삶의 질이 높기 어려울 뿐더러 타인들이 괜히 함께 부대끼며 작업하기 꺼려할 수 있는 유형의 성향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완벽주의' 를 학계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성향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완벽주의를 정의한다. 학계의 개념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차적으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 대신 '신경증적/역기능적/부적응적 완벽주의' 와 '긍정적/기능적/적응적 완벽주의', 기능적인 측면의 두 부류로 나누어 완벽주의를 개념화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이는 통용되고 있는, 극한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이미지는 '신경증적 완벽주의'에 국한되는 이미지임을 나타낸다.
완벽주의의 다차원적 척도(Multidimentional Perfectionism Scale : HMPS)를 도입한 대표적인 논문 중 하나인 Hewitt와 Flett(1991)의 'Perfectionism in the Self and Social Contexts: Conceptualization, Assessment, and Association With Psychopathology'에서는, 완벽함이 향하는 대상에 따라서 자기지향, 타인지향, 그리고 사회로부터 부과된 완벽주의 차원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다차원 척도(FMPS)를 도입한 Frost와 동료들의 93년도 논문에서는 FMPS와 HMPS를 분석하여 완벽주의의 요인들을 정리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표에서는, '건강한 완벽주의'는 자기 및 타인지향 완벽주의가 높되 사회부과 측면은 낮은 반면, 역기능적 완벽주의자들은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준 보인다 는 논문의 결론을 보기 쉽게 나타내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2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함의한다.
1.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비난' 및 '완벽주의'는 부적응적인 측면을 강조
2. 신경증적/역기능적 완벽주의는 '실수에 대한 염려'와 '수행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비롯됨
1. 건강하지 못한 완벽주의자들은 주로 사회의 잣대로 자신을 바라본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 만족할만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경우의 비난, 그리고 강조되는 완벽성에 의해 남의 기준에 맞춰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수행보다 제 수행이 높아야만 하는 수행지향적 사고가 머릿속을 지배하며, 남들의 눈치를 비교적 많이 신경쓰게 된다.
2. 따라서 자신의 수행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성향(수행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채찍질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레 실수를 병적으로 두려워하고(실수에 대한 염려), '실패하면 어떡하지?', '남들이 이 실수를 우습게 여길거야' (실패공포)와 같은 미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자기손상화'를 야기한다. 자기손상화란 스스로 성공을 방해하는 요인을 만드는 전략으로, 자신의 능력에 귀인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방해요인에 귀인함으로써 실패를 변명하기 위한 수단이다(Jones & Berglas, 1978). 성공의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에 귀인하되, 실패의 경우 외부요인으로 귀인하게 되는 귀인편향(자기접대 편향)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자기 능력에 대한 신념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기제의 일환인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능력에 대한 신념이 일반적인 성향의 사람들보다 비교적 더 강하다 할 수 있기에 더욱 방어에 힘을 쓰곤 한다.
자기손상화 중 하나의 전략으로서 의도적으로 학습을 지연시키고(학습지연), 자연스레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울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어 성적과 수행이 좋지 않음이 드러나면 다시 자기방어를 하는 등 악순환 고리에 빠지게 되어 신경증적 성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주의가 적응적이기 위해서는 어릴적 자신에게 의미있는, 다양한 '성공경험'에 의한 자신감(자기효능감)에서 비롯된 '낙관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부담을 이겨내거나 자체적으로 여과하기 위해 '그저 자신의 길을 걷기만 하면 되노라', 하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실패를 건설적으로 받아들여 계속해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다른 모든 개념이 과하면 지나치듯, 낙관성 또한 역기능적인 특성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귀인이론' 이후의 '성공경험, 자기효능감 그리고 낙관성' 에 대한 시리즈에서 계속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급한 적응적인 완벽주의성을 자신의 공부상황에 적용해보자.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컨디션 등을 통제하고, 노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를 해보자.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수학시험에서 모두 정답을 맞을 확률은 어떻게 될까.
초중고 그리고 대학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덧셈뺄셈을 해왔고, 심지어 훨씬 웃도는 크기의 수를 다뤄본 경험이 있다. 혹여나 글씨를 잘못 알아보아 계산 실수라도 할까 무서워 자신이 잘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시험글씨모드'를 조성해놓았다.
그러나 100%의 확률은 아닐 것이다. 출제 담당 교사선생님이 창의력을 요하는 초등학교 경시대회 수준의 문제를 우연찮게 섞어넣었을 수 있다. 이는 틀에 박힌 한낱 단순 문제풀이형 인간인 나를 충분히 고전하게 할 것이다. 또한 우연히 생긴 자신의 시험지 파본을 발견하지 못해 OMR 체크를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쉽게 생각한 나머지 ‘모두’ 고르라는 문항의 지시를 간과한 채 하나의 선지에만 체크를 했을 수 있다. 영어의 경우, 듣기 시간에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때문에 잠깐 흐름을 놓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내가 언급한 이러한 예시들 역시, 운이 아니라 실력의 부족이라 생각할 수 있다. 파본과 같은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기에 미리 체크를 해야했고, '모두'를 보지 못하는 것은 바보같은 실력 때문이라고 말이다. 영어듣기 시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사태 또한 충분히 예상가능한 범주에 있을 수 있기에 이러한 경우까지 고려하여 멘탈과 실력을 다져놓아야한다 주장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주장하는 바가 필자의 입장이다. 이런 간단한 예시들처럼, ‘기’라는 것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 의 문제는 개인마다 굉장히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시험 당일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자신의 공부과정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이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1. 내가 당일날 배가 굉장히 아프게 된다면?
그동안 그렇게 미친듯이 공부해놓고, 컨디션 난조로 시험을 못보게 된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나를 탐구했다. 하루에 세 끼 먹되 긴장하게 되면 심장이 빨리 뛰며 속이 더부룩해진다. 모의고사를 수도 없이 보면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 중 하나가 시험 당일날 일어나자마자 장이 깨끗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아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다소 아침의 장 컨디션이 중요한 긴장되는 날을 골라, 그 전 날에 실험을 했다. 어떨 때는 아침만, 어떨 때는 점심만 또는 저녁만 먹어보고, 다음에는 아침점심, 아침저녁, 점심저녁, 그리고 다른 날은 아침점심저녁을 먹어보는 방식으로 실험을 했다. 어떤 방식이 괜찮다, 싶으면 횟수를 늘려가면서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식사 방식을 찾으려 노력했다. 먹는 내용물도 바꿔보고 시간을 조금씩 늦춰보기도 당겨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방식이, 삼각김밥 2개와 우유로 아침을 시작해서 학교에서 제공되는 점심을 반 정도만 먹고, 저녁은 먹지않되 8-9시 쯤에 또 삼각김밥을 먹고는 자기 전 살짝 출출할 때 오뜨나 몽쉘과 같은 과자를 먹고 잠드는 것이었다. 정말 이게 제일 편했다. 기본적으로 식사를 하면서 공부하는 게 심적으로 편했을 뿐더러, 시험 전날에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게 내게 맞았다. 다음날 허기진 느낌도 없었고 속도 좋았으며, 전날만 그렇게 때우는 방법이라 영양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다음날의 컨디션을 내가 실험해가며 통제할 수 있다. 물론 감기와 몸살 등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중요한 시험의 경우, 적어도 3일 전부터 먹는 것, 입는 것을 신경쓰며 조절해야한다. 이러한 통제는 전날 바짝 노력한다고 좋아지지 않을 뿐더러, 시험 당시 콧물 훌쩍이는 것조차 미세하게 신경을 긁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필히 관리해야한다. 필자는 조금 덥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옷을 입는 것 말고는, 이외의 노력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물론 각자 성향이 다르고,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자신만의 적정 수준의 징크스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심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편할만한 조건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패턴을 찾고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인지적인 노력과 시간들이 그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게끔 해주는 발판이 되어준다. 노력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2. 잠이 왜 이렇게 많을까?
필자는 고시원에서 혼자 공부하며 재수생활을 보냈다. 따라서 잠자는 시간 및 공부하는 시간을 내게 맞게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잠이 너무 많아 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느꼈고, 밥 먹는 것을 실험하고 통제하려했던 때와 같이 자체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내게 경험적으로 잠에 대해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 ‘아 큰일났다. 빨리 공부해야지.’ 싶은 상태에서의 공부 효율이 무서우리만큼 높았다는 점이다.(이는 개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졌고,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공부 자세가 좋은 게 아니기에 몸이 늘어졌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고들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단순하게 행동했다.
밥을 먹고는 그냥 자는 것이다. 자고나면 미친 듯이 공부하고 싶어졌고 공부 효율은 높아졌다. 잠을 자되, 먹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로 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설계하다보니 잠을 3시간자고 4-5시간 공부, 또 3시간 가량을 자고 4-5시간 공부, 또 자고는 4-5시간 공부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최대로는 14시간 정도, 적어도 10시간 정도는 넘기는 생활을 비교적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패턴 속에서도 잠이 공부를 방해한다면, 일차적으로 국어나 수학과 같은 과목을 자체적으로 시험을 봤고(시간에 쫓겨가며 시험볼 때의 집중력이 잠을 깨우는 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 다음에는 팔굽혀펴기를 미친듯이 하거나 새벽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뛰며 운동을 했고, 미친듯이 찬물과 뜨거운 물에 번갈아 세수를 하고는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고 나면, 노래를 들으며 공부했다. 각자 잠을 깨우는 방식과 효율이 있으니 자신만의 방식을 점검해보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이런 식으로 탐구해가는 과정이 꽤나 힘들고 지난할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좀처럼 그렇지 않다. 나를 알아가는 재미를 하나씩 붙여가면 '나'라는 캐릭터를 두고 하는 게임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깨우쳐가며 투자하는 노력을 스스로 느껴가며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오는 공부 실력과 내게 맞는 생활습관은 덤이다. 공부를 하되,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을 공부해보자. 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귀인[통제가능성] 2.완벽주의성향[경우의수, 비교, 시뮬레이션] 3.낙관성(기대), 자기효능감, 성공경험
4.가치
5.모델링 및 친밀성 6.선택적 내면화 및 자율성 7.목표지향성[숙달, 수행]
8.기억력 9.추론 및 이해 10.절차기억화(자동화) 11.신경망적 지식 12.전문가 및 창의성
13. 가정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