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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경섭 Nov 03. 2021

농담의 조건

코미디의 기본은?


지난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지난화에는, 저를 포함한 dxyz팀이 스케치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온갖 코미디 콘텐츠들을 보고 분석하고 패턴을 발견해 몇 가지 공식으로 정립했던 일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공식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코미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데드라인 임박! 끝장 회의 합숙!


우리가 만든 웃음 공식을 가이드라인 삼아 이야기를 계속 만들었습니다. 웃음 공식은 서로 합의된 내용이라 러프하게 쓴 대본도 서로 이해하기도 쉬웠습니다. 가이드라인이 있으니 채택되지 않았을 때 다시 처음부터 쓰기에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공식에 적용하면 금방 쓰니까요. 굉장히 효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금방 재미있는 대본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촬영할 만큼 괜찮은 대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본을 쓰는데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작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끝장을 보기 위해 ‘dxyz’팀은 합숙에 들어갔습니다. 촬영할만한 대본(에피소드) 3개 나올 때까지 아무도 집에 갈 생각하지 마! 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4박 5일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다른 걸 떠나서, 낯선 환경에 (당시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습니다. 잠을 깊게 잘 수 없었고,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낯선 장소의 화장실에서 볼 일 못 보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dxyz 팀 모두가 각각 대본을 참 많이도 썼습니다. 우리가 쓴 에피소드가 100편은 무조건 넘었을 겁니다. 그러나 합숙 마지막 날까지도 괜찮은 대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코미디의 본질


저는 낯선 환경에서 오래 머무는 부담감과 더불어 아이디어를 더 짜내는 것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써보고 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포기할 생각이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우리가 합의한 공식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난 1년간 방구석에서 홀로 공부한 시나리오 작법 책들에서 하나같이 말한 스토리 이론의 정석 그대로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정석이 먹히나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대본을 하나를 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석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할리우드 3막 구성을 말합니다. 이야기에는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듬어지고 견고해진 스토리 작법입니다.


3막 구조을 모르고서는 스토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3막 구조 이미지 출처 : ‘친절한 빠르크’ 티스토리 블로그 (park3min.com/576)




“나왔다.”


‘dxyz’팀의 대장인 연출 감독님이 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쓴 대본을 보더니 나지막이 한 말입니다. 드디어 촬영할 만큼 괜찮은 대본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저는 기쁘기보다 조금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며칠 동안 스터디를 해서 정립한 웃음 공식을 사용한 게 아니고, 전형적인 스토리 작법을 따라 전형적인 대본을 썼더니 통과가 되었으니까요. 너무 평범하다고 좋은 평을 듣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코미디라는 장르도 결국 그 뿌리는 ‘스토리’라는 것. 어떤 방식으로 웃길지 노력하기 이전에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에 먼저 신경을 썼어야 했습니다. 기본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웃음 공식을 적용한 대본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인테리어가 멋져서 간 음식점에서 음식 맛에 실망하는 경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은 스토리의 독특한 형식이나, 소재, 연기, 찰나의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것들도 중요한 요소들이긴 하지만요)


정리하면, 코미디도 결국 본질은 ‘스토리’다. 우리가 공부하고 찾아낸 웃음 공식은 표면에 드러난 기교일 뿐이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로 저는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기본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첫 작품, dxyz <좀비>편.


이렇게 처음으로 통과된 dxyz의 첫 대본이 바로 ‘좀비’ 편입니다. 우리가 정립한 웃음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스토리 작법의 기본기를 따른 에피소드이죠.

에피소드 2 지만, 원래는 가장 처음 만들어진 대본이 <좀비>편.

[ dxyz EP2. 두여자와 좀비 ]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m55U7WwbN4o

영상 내용  :  좀비에 물린 친구가 자신이 좀비로 변하면 주저 말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좀비가 되어 죽이려고 하니, 서운해한다.


기본기를 지켰으니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을까요?


(단호) 아니요.


업의 본질에 집중하고 기본기를 갖추는 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 이어가겠습니다.




다음화 : 웃기는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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