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경섭 Jan 21. 2022

웃기는 글에 침 못 뱉는다

기분 나쁘지 않은 블랙코미디 쓰는 법

<두여자와 햄버거> 영상 보러가기


<두여자와 햄버거> 이야기의 시작

dxyz 에피소드 3, 4, 5, 6(각각 햄버거, 음주측정, 시력검사, 아는 사람)은 같은 기간에 만들어졌다. 나는 에피소드 1과 2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게다가 1과 2는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동료작가들이 있었는데, 3부터는 혼자 해내야 했다.


정말 많은 소재들로 많은 이야기를 썼다. 통과되지 못하는 소재는 여러 이유로 다시 쓸 수 없었다. 점차 쓸 소재는 고갈되어 갔다. 매 순간, 일상의 모든 순간이 대본 소재를 찾는 것에 초점이 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라는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맥도날드화’는 저자가 이름 붙인 사회현상으로, 그냥 ‘프렌차이즈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렌차이즈의 대표적인 사례가 맥도날드니까.

이 책의 주제는 대략 이렇다. 효율성을 내세워 시스템을 만들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합리성, 비인간화와 인간소외 등의 사회문제를 합리화하는 현대 사회의 거대 기업들을 비판한다. 패스트푸드점이 테이블 회전률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의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맥도날드화’가 만드는 사회문제의 유형 중 하나로, 기업이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면서 노동자는 물론이고 소비자까지 통제한다고 꼬집는다.

132p. 고객에게 일시키기
맥도날드화된 세계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마지막 메커니즘은 고객에게 일을 떠넘기는 것이다. 고객은 소비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도 참여하며(즉 일하며), 따라서 생산-소비 과정의 일원이 된다. (중략)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된 다른 분야의 고객들은 일종의 ‘프로슈머’로 ‘노동하는 소비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무보수 “셀프서비스 노동”을 하고 있다.

-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본문 중 -

이부분을 읽으며 기업의 친절은 기업의 이익을 위함이지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재미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기업을 대변하는) 직원이 소비자에게 친절하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습.


‘햄버거’ 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 에피소드로 팬들에게 ‘두여자가 돌아왔다’는 평을 받고, 유튜브에서 100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몇몇 CF에서 패러디하고, 에미상 숏폼 시리즈 후보에 오르는 등 국내외로 꽤 많은 인기를 얻었다.



사회비판을 담은 이야기를 쓸 때 주의할 점


‘햄버거’를 재밌게 본 사람 중에 종종 ‘사회 비판을 담은 내용 맞나요?’라고 물어온다. 사실 사회 비판을 담은 내용이 맞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 소재의 출발만 그렇다고 답한다. ‘사회 비판’이 이야기의 재미보다 앞에 나오게 되면 재미를 잃는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에 사회문제를 담는 건 난이도가 높다. 어려운 이유 첫 번째. 이야기를 만들 때 작가의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보는 사람도 거부감이 들어 아예 보지 않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다 보면 이야기의 본질적인 재미를 놓치게 된다.


시나리오 작법서 중 가장 유명한 책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로버트 맥기)에서도 ‘의미’에 관한 챕터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176p. 작가의 아이디어가 직접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하면 영화의 수준은 현격히 떨어진다.
177p. 숙련된 이야기꾼은 절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중략) 어떤 아이디어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도록 강요당할 때, 관객이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것은 물론 절대로 설득당하지 않는다.
180p. 어떤 하나의 분명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관객들은 작가의 아이디어에 들어 있는 함의를 자신들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적용하는 가운데 작품 속에서 더욱 다양한 의미를 발견해 낸다. 그와 반대로 작가가 이야기 안에 많은 아이디어를 포함하려 하면 할수록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걸어 잠근 채 그 작품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단편 쪼가리들로 분해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게 된다.

따라서, 사회비판을 담거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쓸 때 주의할 점은, ‘이야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냐’라고 생각한다. 코어 메시지가 명확하기만 하다면, 로버트 맥기의 말처럼 관객들이 스스로가 더욱 다양한 의미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있지 않은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도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최근에 본 영화는 <돈 룩 업>을 들 수 있겠다. 정말 강력 추천!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미디어 센터


TMI

당연하게도, 햄버거 편의 흥행은 내가 대본을 잘 써서만이 아니다. 모든 영상매체가 그럴 것이다. 대사의 티키타카를 리드미컬하고 맛깔나게 잘 살리는 연출 감독님, 영상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미술감독님, 적절한 조명을 사용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조명 감독님, 가장 좋은 구도를 잡아주는 촬영 감독님, 촬영장의 행정보급관 역할의 PD님, 현장의 지휘 통제 조연출님 등등, 이 모든 파트가 최적의 합을 이룰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72초> 에서의 생활은 영상 제작의 과정을 모두 겪어볼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나는 프로덕션 기간이 시작되면 미술팀으로 일했다. 미술감독님이 거의 혼자 다 했고, 나는 전공인 디자인 경험을 살려 옆에서 자잘한 것을 도왔다. 작은 요소의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대도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전공을 살려 스케치업으로 세트장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햄버거 세트장 비포&애프터. 이 날 다들 엄청 고생했다.
세트장이 완성되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끝)

매거진의 이전글 고유한 농담이 되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