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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경섭 Apr 18. 2022

웃기려고 들 때는 안 웃더니 꼭

일에 임하는 자세

‘일’에 힘을 준다는 의미는 그만큼 부담감과 기대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만큼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반비례하게 되는 것 같다. 똑같은 10만 원을 벌었을 때, 100만 원을 투자했다면 결과가 좋게 느껴지지만, 1000만 원을 투자했다면 시큰둥해지는 것과 같다. 


두여자와 음주측정


내가 대본을 쓴 dxyz 채널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은 영상은 ‘두여자와 음주측정’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불법으로 콘텐츠를 퍼다가 올리는 유머 계정에서도 많이 떠돌았는지, 종종 ‘페이스북에서 봤다’, ‘인스타에서 봤다’는 댓글이 달린다.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틱톡’에서도 많이 패러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틱톡’을 이용하지 않아 몰랐으나 댓글과 지인에게 전해 들었다.


dxyz 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두여자와 음주측정’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dxyz 콘텐츠 중 제일 쉽게 쓴 대본이다.


나의 지난 글, <웃기는 게 일이라서>에 적은 코미디 공식 중 ‘확장’을 이용했고, 또 다른 나의 지난 글, <농담의 조건>에서 언급한 기본 ‘3막 구성’을 바탕으로 숏폼 콘텐츠에 맞게 내 방식대로 변형해 만든 이야기가 바로 ‘두여자와 음주측정’이다. 세부 내용은 즉흥적인 농담으로 썼다. 속된 말로 ‘개드립’을 만든 공식 안에 나열했을 뿐이었다. 


이 영상이 가장 인기가 있는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직관적이고 쉬운 농담 덕분일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 이런 걸 할 수 있냐고 누군가가 내게 물으면, 자신 없다.


힘을 뺐을 때 더 좋은 결과를 얻는 일. 이런 경험은 디자인을 하던 학부생 때부터 일을 하는 지금까지 내내 있어왔다. 내가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준비했거나, ‘이건 정말 재밌다, 대박이다’라고 느끼는 ‘자기 확신’을 가졌을 때는 대체로 시큰둥한 피드백을 받았고, ‘될 대로 되라지, 이 이상 나는 못한다, 배 째라, 난 모르겠다, 난 여기까지다’ 같은 종류의 내려놓는 마음이 들 때 만들었던 작업물은 많은 확률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서 어떤 규칙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좋은 결과물을 확률 높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알 수가 없다. 여러 자기 계발서, 방법론 실용서를 읽으며 지난 경험에 대해 분석도 해보고 현실에 적용해보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현실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높은 확률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지고 있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노력을 덜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일이란, 업무의 형태는 항상 비슷하지만, 한 사이클이 돌고 나서 다시 새로 시작되는 프로젝트는 매번 새로운 일 아닌가? 그래서 일이란 지도 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오래 걸었는데 엉뚱한 곳에 다다를 수도 있고, 잠깐 걸었는데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도 있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결과를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변수가 발생했을 때 큰 스트레스가 된다.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여행을 지속할 수 있다. 아니, 즐겨야 한다는 말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그냥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루 안에 계획한 모든 여행지를 다 돌아야 하고, 그 모든 곳이 완벽히 멋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여행을 한다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렇게 노력해서 도착한 장소가 아무리 멋지다 한들, 계획에 없던 장소에서 마주친 멋진 풍경보다 더 기분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몸이 상하지 않을 만큼만 성실히 일에 임하자’가 요즘 내가 일에 임하는 자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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