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경섭 Jan 16. 2022

고유한 농담이 되도록


지난 화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화 :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코미디라는 장르를 스터디하면서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고민해야 했던 것이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2화 : 그건 바로 ‘스토리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지, 였습니다. 코미디도 결국은 ‘스토리’라는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놓친 것일까?


스토리의 기본기를 지켜 코미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많은 시청자들은 이전의 ‘두여자’ 시리즈와 비교하며 혹평을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dxyz팀은 잠시 멈추고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두여자'를 좋아했던 팬들의 댓글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두여자’만이 가진 매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포인트가 바로 ‘두여자’라는 콘텐츠를 다른 콘텐츠들과 구별하게 해주는 특성이자 콘텐츠의 본질이었습니다.


<다른 콘텐츠들과 구별되는 '두여자'만의 특성>

1. 건조한 연기.

2. 리드미컬하고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

3. 배경음악의 박자와 맞아떨어지는 대사 호흡.

4. 간결한 컷 구성 (2번, 3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5. 비현실적인 미술 (비현실적인 공간 미술은 위 요소들에 설득력을 준다)


이러한 콘텐츠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했던 dxyz팀은, ‘두여자’의 모든 것을 엎을 것이 아니라 강점을 다시 살려보고자 했습니다.


제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위에 나열한 '두여자'만의 특성들을 반드시 포함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지난 '두여자' 시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별 수 없이,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습니다. 열심히 대본을 썼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조회수 100만을 넘긴 ‘햄버거’ 편입니다.

dxyz EP3. 두여자와 햄버거


이후 dxyz에서 나오는 콘텐츠들은 좋은 반응을 얻으며 많은 패러디를 낳았고, 2020년에는 tvN 롤러코스터-리부트의 한 코너를 맡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dxyz팀에게도, 72초에게도 첫 TV 진출이었습니다.


두여자와 햄버거 기획노트 보러가기 : https://brunch.co.kr/@soks90/76



그래서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게 뭐냐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만드는 ‘브랜드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여자’는 이미 시즌이 2개나 나와 있던 콘텐츠로, 어느 정도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이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가 갑자기 치킨을 팔면 충성고객들이 놀라듯, 당연히 브랜드의 갑작스러운 큰 변화는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겠죠.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가진 브랜드의 본질을 먼저 고려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브랜드를 좋아하는 고객들 또한 고려해야 했습니다.


맨 처음부터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단계 : 저(dxyz팀)는 짧은 스케치 코미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코미디를 어떤 형식으로 풀지 고민했죠.

2단계 : 그러나 그전에 스토리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코미디란 스토리를 뿌리로 둔 장르일 뿐이니까요.

3단계 : 거기서 끝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들기 이전에 콘텐츠(브랜드)의 본질은 무엇인가 역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콘텐츠를 소비할 고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습니다.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다보면 자연스레 브랜드의 비전과 미션을 고민하게 됩니다.

더 내려가면 브랜드를 만드는 구성원(주체)들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까지 내려갑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dxyz팀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브랜딩 관점에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다른 분야의 일들과 다르지 않더군요.

결론.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입니다.

생각보다 아주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이 경험 이후로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도 고민합니다.  



사이먼 시넥의 골든서클 / 이미지출처 : platformworks.co.kr


사이먼 시넥(Simon Sinek)의 골든서클을 떠올리는 분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골든서클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많이 간소화한 것 같아요. 직접 경험을 해보니 '본질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건 골든서클처럼 3단계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일의 형태에 따라 3단계 이상의 세분화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책, [AI시대 사람의 조건 휴탈리티 / 박정열 지음] 중 일부.


각기 다른 모양의 의자들이 있다. 모두 ‘의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모두 사람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용도’가 같기 때문이다. 모양과 색상의 다양성은 덧대어진 요소일 뿐 의자라는 본래의 용도는 동일하다. 여기서 ‘덧대었다’는 단어는 ‘부가가치가 있다’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 앉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본연의 가치에 소장 가치, 장식적 가치, 예술적 가치 등 여러 가치들이 더해질 수 있다. 용도라는 건 의자를 의자로 간주하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절대 기준이 되는 셈이다.


본질을 유지하면서 덧댄 가치로 말미암아 드러난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 본질은 심연에서 뚝심을 견고히 해주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덧대어지는 가치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이 된다. 본질과 현상이 만들어내는 이 화수분 같은 다양함은 참으로 창의적이고 건강하며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반면 건강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않은 상황도 있을 수 있는데, 바로 본질이 훼손되는 상황이다. 크게 두 가지다.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 그리고 드러난 현상 때문에 본질이 왜곡되는 상황.


본질이 아닌 덧댄 것에 휘둘리면 현상의 다양성은 혼란과 허상으로 전락하고 현상의 견고한 뿌리여야 할 본질은 썩는다.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들이 난무하면 결국 병들고 추해진다.


창의는 본질에 더 충실할 때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본질에 충실한 인식, 사고의 힘을 키우지 않고 온갖 창의적 발상 기법을 떠 넣으려 하는 학교와 회사의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고 본질로부터 덧댈 가치를 추출해내는 힘을 키우지 않고는 100가지 창의적 발상 기법도 무용지물이다.



(끝)



다음글 : 웃기는 글에 침 못 뱉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웃기는 준비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