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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소녀상 철거 1

2021-01-02 19:09:42

윤향미 사태를 통해, 그 통속들이 소녀상을 설치하면서 장사 잇속을 챙긴 것이 밝혀 졌다. 

국내의 여러 학교와 장소에서 소녀상을 설치하면서 꽤나 톡톡한 가격을 받아 챙긴 듯 하다. 

이 것이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도 있다고 한다. 

나 역시도 소녀상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뭔가 모르게 개운한 느낌 또한 없었다. 

마치, 우리는 피해자고 일본이 가해자니까 일본에 대해 보복해 달라는 듯 한 메시지. 

만일, 우리 국력이 강하고,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국가였다면, 소녀상을 설치하기 이전에 이미 일본은 위안부 사태에 대해 세계적인 사과 성명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위상적이지 못 하고, 우리가 일본에 대한 그만한 요구를 할 입장이 못 되기 때문에 타국에 국제적으로 호소를 하는 것이다. 

그 간에 어느 정도 홍보가 되기도 했지만,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세계가 그다지 주목하지 못 한 것도 사실이다. 


결연하면서도 울분을 속에 담고 있는 듯 한 표정의 소녀상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소녀상에 그들의 역겨운 장사속과 피해 의식, 피해자에 대해서는 항상 보호를 받아야 하며, 위로를 받아야 하는 세간의 인식을 등에 업는, 교묘한 군림 행위라고 본다. 

누구도 소녀상에 돌을 던질 수 없다. 

그 것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2 차 가해니까. 

그랬다간, 전 세계인의 몰매를 한꺼번에 맞을 것이다. 

이 것은 권력이다. 

고위 관료의 공권력을 뛰어 넘는 피해집단 권력. 

그들은 항상 그렇게 옹호를 받아 왔으며,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가해자인 일본을 공격하는 영웅이 된 것이다. 

그들이 국가 선양을 하고, 마치 일본을 공격하면서 우리가 당한 만큼 보복해 주는 영웅인 것이다. 

윤향미 비리 사태가 터질 때, 기자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질문을 듣자, 그들은 “모욕적.”이라는 표현으로 반박했다. 

그들 스스로 정의로운 일에 앞장을 섰는데, 어떻게 자신들을 부정적인 집단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동안 신나게 영웅 대접을 받았고, 스스로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욕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없다. 


그들은 일본의 사과를 받아 냄으로써 한일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행보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에 아베 총리의 배상금 합의가 오갈 적에, 그들은 반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를 했다. 

이유야 당연하다. 

그들은 한일의 불화가 지속적인 대중 권력 유지와 각종 기부금, 소녀상 장사 유지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한일 불화는, 좌파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흐름을 타기도 했다. 

헌데, 갑자기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풀려 나간다면, 일본을 공격할 빌미가 무엇이 있겠으며, 기부금의 명목, 소녀상 판매, 단체의 존립성이 사라 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한일 이간질에 앞장서서 공돈을 뜯고, 감투를 차려는 것이 주 관심사이다. 


진정한 한일 관계 정상화란, 일본을 배타적으로 굴복시켜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정상화가 아니다. 

양국이 과거 문제에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는 관점을 가지고 양국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은 막연히 이득만 본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일본도 태평양 전쟁으로 많은 희생과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자국의 힘을 과신해서 고통을 받았고, 우리 민족은 무능하고 힘이 없어서 고통을 받았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관점에서 계산기를 두들겨서 너보다 내가 더 아프네, 하는 소리를 하자면 이 것은 영원히 싸울 수 밖에 없다. 

과거를 묻자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 세기 전의 역사이고, 지금은 지금의 정세로 일본을 바라 보고 상대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웃 국가이다. 

이 것은 지정학적 숙명이다. 

헌데, 지금의 관계는 접어 두면서 과거 시각에 고정돼서 반목한다면, 한일 갈등은 근본을 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와 갈등은 양국이 그대로 받게 될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양국은 문화적, 언어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과거 중세에는 중국을 통해 신 문물을 전해 받았다면,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을 통해서 신 문물을 많이 받아 성장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양 문물은, 일본을 통해서 우리가 접한 것이다. 

일본의 이와 같은 역할이 이제는 퇴색하고 말았지만, 우리네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라는 지리적 숙명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 것부터 한일 문제가 풀리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일이 같이 공유할 것은 공유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다 보면, 한일 우호 관계는 더욱 돈독해 질 것이고, 언젠가 한일의 과거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다시 바라 볼 때가 올 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면, 오래 묵은 한일 역사 문제도 덩달아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시점에서 한일에게 서로 필요로 한 것을 교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와 동시에 진행돼야 할 작업이, 소녀상 철거이다. 

윤미향 비리 사태 만으로도 소녀상 철거에 대한 명분은 충분하다고 본다. 

내친 김에 소녀상 얘기를 더 해 보자. 

소녀상을 내세움으로써 일본을 나쁘게 만들어서 일본에 보복하자는 것인데, 이 것이 정작 한일 관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평화가 일본은 침략국이기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아야 된다면, 우리도 일본을 침략해서 똑같이 해 줘야 마땅하다고 보지 않는가. 


일본의 사과를 바란다던데, 하토야마 전 총리가 적극적인 표현으로 분명하게 사과하기도 했다. 

뭘 더 어떻게 해야 우리의 분이 풀린단 말인가. 

우리도 일본을 침략해서 똑같이 보복하자는 말을 용기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인가, 다른 분풀이 방식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소녀상이 뭐가 그리도 자랑스럽게 떳떳해서 국내도 모자라, 해외까지 세워 놓고 기자들한테 사진을 찍게끔 한단 말인가. 

우리가 무능해서 당한 것이 자랑스러운가? 

우리 민족이 수치를 당한 것이 그리도 대단하고 떳떳한가? 

뭐가 그 것이 자랑스럽다고 전 세계인들에게 동상으로 만들어서까지 떠들어 댄단 말인가. 

우리 민족의 수치와 굴욕이 일본에게 당한 것만으로도 모자란가. 

우리 나라가 고도의 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다른 선진국에게 일본을 대신 때려 달라고 매달리면서 조르는 형국이다. 

이 것이 우리 민족의 긍지있는 모습인가? 

어린 애 같은 발상이다. 

우리는 외형만 성장했지, 여전히 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 성숙하지 못 했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무능한 민족의 결과가 이렇다라는 교훈을 얻지 못 했다. 

우리의 힘을 키워서 국제 무대에 우리 위상을 드높일 때에 일본이 우리를 다시 우러러 보게 되고, 그로 인해 과거사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를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외교적인 압박으로 굴복시켜서 사과 형식으로 굴복을 받아 내는 것은 사과가 아니다. 

그 것은 비 무력적인, 무형의 외교적 보복이다. 

우리가 당한 아픔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국력을 키우지 못 했다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침략했다는 원죄가 있으므로, 일본이 응징당해야 마땅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헌데, 우리도 똑같이 침략하자고 할 수는 없고, 그나마 가능한 것이 외교적으로 굴복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진솔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참 모습을 바로 보자. 

우리는 평화를 바라고, 올바른 역사를 세우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보복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참혹한 역사 속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 했다. 

우리가 우리 일을 하지 않고 도태될 때, 일본이 됐던, 미국이 됐던, 러시아, 중국이 됐던, 어느 나라에게 당해도 당할 수 밖에 없다. 

소녀상을 다시 바라 보자. 

소녀상은 우리의 무능이다. 

또, 아직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우지 못 했음을 의미한다. 

소녀상은 우리의 굴욕이자, 치졸함이다. 

우리가 진정 과거 역사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었다면, 어떻게 소녀상으로 장사를 하고, 위안부 할머니를 내세워 대중들을 농락하고, 전 세계에 우리 치부를 드러 내면서까지 일본에 보복하고자 하는가. 

일제 식민지는 우리가 무지하고 무능해서 강제적으로 당했다고 치지만, 소녀상은 우리가 자진해서 우리 치부를 드러 내면서, 세계에 아첨까지 더 해가며 일본에 보복하자는 자진 굴욕 행태이다. 

역겹고 부끄럽다. 

소녀상을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 무능과 무지를 바라 봐야지, 일본의 칼을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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