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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소녀상 철거 2

2021-01-02 19:09:56

윤향미 비리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얼마 후, 소녀상을 돌로 가격하는 남성이 체포됐다는 기사가 떴다. 

뚜렷한 범행 동기는 알지 못 하지만, 그 남성은 분명히 윤향미 사태를 통해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크게 분노하지 않고서야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일반적인 대중이라면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는 데에 그쳤겠지만, 분명히 소녀상을 비롯한 윤향미 일당들의 행태에 크게 문제점을 느낀 것은 자명하다. 

그 분을 풀 데가 소녀상이 접근하기 쉽기 때문에 소녀상에 분풀이를 한 것이다. 

여기서 대중들의 모습을 한 번 보자. 

많은 대중들이 윤향미 비리 사건이 뉴스에 떴을 적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폭로를 한 이용수 할머니가 고령이라 믿을 수 없다는 다른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윤향미 일당을 성토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후에 소녀상 공격 기사가 떴을 때는 어떤 여론이 지배적이었을까? 

기사의 모든 댓글을 다 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남성이 행동은 도를 넘었으며, 처벌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윤향미의 비리는 분명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소녀상의 원 모델이랄 수 있는 할머니들은 보호 대상이라고 여긴 듯 하다.

남성의 정확한 목표가 누구인 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정황 상, 할머니들이 아니라 윤향미 일당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또 본질을 놓쳤다. 

우리는 또 겉만 보고서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암담한 현실을 느꼈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 우리는 현상을 파악하는 시각이 매우 표면적이라는 데서 절망을 느낀 것이다. 

이런 판단력이라면, 우리는 또 누군가의 감언이설과 현혹에 언제든지 동조될 수 밖에 없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게 당했 듯이, 지금의 윤향미 일당에게 현혹당했 듯이 말이다. 

설령 윤향미들을 처벌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수법의 다른 잠재적 존재들이 이 세상을 또 흔들기 위해 준비 중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작업은 이미 진행 중임이 틀림 없다. 

어떻게 확신하는가. 

세상을 농락하는 이들은, 농락할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의 우리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생을 보라. 

당시 연령이 어릴 때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에 할머니들은 역사의 산 증인임에도 역사 속에서 배운 바가 없었다. 

지극히 단순했다. 

우리는 피해자이니까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식으로 일본을 반목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누구도 그 할머니들에게 진정성있는, 용기있는 쓴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도리어, 거기에 동조해서 후원을 하고 일본을 공격하는 데에 가세해 버렸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젊을 때는 일본에게 당하더니, 이제는 동지고 우군이라 여겼던 윤향미 일당에게 오랫 동안 톡톡히 농락당했음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가판대에 진열된 상품이었을 뿐, 할머니들 스스로 주도적이지 못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할머니들이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겠는가, 인터넷이나 언론을 활용할 줄 아는가,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려서 이끌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을 윤향미 일당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앉아서 다 해주는, 그런 와중에 그들이 순진하고 정직하기까지 바랬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가. 

만일, 할머니들이 역사 속에서의 진정한 배움, 우리 민족의 힘을 키우고,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쳤다면, 할머니들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고, 일본을 배척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 교육 활동을 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 상태에서 윤향미 일당을 만난다고 치면, 애초에 접근 단계부터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고, 그들과 같이 손잡고 활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여라도 같이 활동을 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윤향미 일당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 때 중단했더라면 오늘 날까지 이런 비통한 순간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간파한 것이 다행일까.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지 못 했을 지도 모를 일일 것이다. 


우리의 힘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아직도 배우지 못 했다. 

그러니, 평생 농락만 당하다 일생을 끝내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 말이 엄청나게 독한 말이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이다. 

여태까지 일본, 윤향미는 전부 나쁜데, 정작 가운데에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은 성역처럼 빗겨 나갔다. 

누구도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동정만 해 왔지, 엄격한 지적을 한 자가 아무도 없다. 

오늘 날의 윤향미 사태에 대해 할머니들은 아무 잘못이 없고,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순전히 자신들의 아픔과 피해 밖에 볼 줄 모르는가? 

그런 나쁜 집단과 손잡과 활동한 할머니들도 책임이 분명히 있다. 

오늘 날 이 사태에 대해, 한일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 한다는 발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사과의 얘기 조차도 못 하는가? 

자신들은 선량하게만 살아 왔는데, 왜 주변에는 이런 인간들 천지라고만 생각이 드는가? 

주변이 선량하기만 기대하질 말고, 자신들부터 힘과 사리분별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윤향미 일당보다 한결같이 당하고만 살아 온 할머니들이 아닐까? 

윤향미 일당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명백히 범죄이고, 잘못이라는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법률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 의식을 제기하지 못 하고,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이 것은 윤향미 사태라는 표면적인 문제보다 더욱 심각하다. 


그 할머니들은 이제 적이 하나 더 늘었다. 

일본에다 배신자 윤향미 일당들까지 더 해 졌다. 

이제, 일본보다는 윤향미 일당들이 더 가까운 적이다. 

이제, 남은 여생을 또 배신자들과 싸우면서 보낼 판이다. 

누구도 용기있게 할머니들에게 정신차릴 수 있는 직언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부재해 보인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닌데, 일개 개인으로 직언을 한다면, 나는 바로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당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을 그렇게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할머니들께서 세상을 뜨기 전이라도 진정한 교훈을 얻고 눈을 감으신다면 그래도 편히 가시겠건만, 안타까울 뿐이다. 

보라, 평생을 외부 탓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한 이들의 삶을. 

우리는 이제라도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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