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09:23:14
한창 장사를 할 때였으니까, 오래 전 일이다.
매장에 쓸 AV 장비를 주문했는데, 내 주문 내역을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전화가 스팸인 줄도 몰랐다.
엄밀히 말하면 무작위 스팸은 아니고, 주문 관련해서 전화를 함과 동시에 다른 상품 팔아 먹는 것을 겸했으니까.
스팸은 철저히 안 받는 주의인데, 찍힌 번호가 용산 쪽 번호여서 내 주문과 관련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받았다.
기억은 안 나는데, 그냥 내가 주문한 거 정상 출고된다는 식의, 해도 그만 안 해도의 쓸 데 없는 전화였던 것 같다.
초장부터 팔어 먹는 얘기하면 안 들을 테니, 내 주문 얘기를 먼저 하고 본격적으로 팔아 먹는 멘트를 시작했다.
"앞으로 화질 좋은 블루 레이가 대세가 됩니다. 미리 준비하셔야 됩니다."
귀찮지만, 그냥 좋게 얘기하고 끝내고 싶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화질 차이 느끼기도 힘들고, 타이틀도 얼마 없는데."
"고객 님, 이제 블루 레이가 대세가 되는데 아직도 DVD 화질이라면, 다른 업소에 뒤쳐지고 맙니다."
그 사정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아는데, 참 가소로웠다.
무심하게 한 마디 되받아 쳤다.
"그럼, 그 때가서 사면 돼요."
그랬더니, 가라 앉는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하고 바로 끊더라.
가전 중에서도 막 가격 거품이 있을 때라, 제법 마진이 되는가 보다.
야마하 앰프 최신 기종을 샀을 때도, 벨레 엑셀랑스 케이블을 그냥 껴 주더라.
그 게 아마 75000 원 정도 하는 디지털 케이블이었다.
안 팔리는 물건, 인심쓰면서 재고 처리일 수도.
그래도 사은품으로 주기에는 제법 비싼 것이었다.
어쨌건, 오죽하면 전화해서 멘트까지 할 정도였을까.
아니면, 윗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열심히 일하는 하급 사원이던가.
블루 레이가 이제 DVD를 대체할 차세대 미디어로 각광을 받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컨텐츠가 아직 미흡하던 때였다.
블루 레이 파는 데를, 지금 전화한 데서만 파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싼 데서 사면 된다.
더군다나, 손님들은 관심도 없다.
느끼지도 못 할 뿐더러.
좀 생각하고 영업을 하면, 그래도 열심히 짜가 굴리네, 세련되게 치고 들어 온다고 느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