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빌어먹는 여인

2021-01-08 19:47:29

by 속선

예전 내 이웃 중에 50 대 후반, 환갑 즈음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조용히 새벽같이 일나가는 부지런한 남자였고, 여자는 가까운 목욕탕에서 일하고 있었다.

둘은 사실, 서로 재혼한 사이인데, 그 동네 절 주지스님이 중매를 서 준 거랬다.


둘은 대체적으로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지만, 다툴 때는 그 소리가 내가 사는 집까지 들릴 정도로 목청놓아 싸웠다.

여러 가지로 레퍼토리로 싸웠는데, 가장 흔한 것이 여자의 돈 문제였다.

그 여자는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돈을 꾸면서 갚지 않는, 고질적인 버릇을 갖고 있었다.

내가 그 집에 갓 들어 살 적에도 나한테 손을 벌렸으니까, 이미 그러고 산 지가 오래 된 베테랑 같았다.

나한테 문자로 한 이삼십만 원 정도를 꿔 달라면서, 조만간 다시 금방 주겠다며.

당연히 그런 뻔한 말을 믿지 않는다.

금방 갚을 돈을, 그 것도 갓 이사온 사람한테 달라는 것 자체가 그 밑바닥이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나한테 꿔달라고 할 정도면, 닳도 닳았다는 얘긴데 뭐.

거절은 해야겠고, 앞으로 싫으나 고우나 같이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데, 그냥 나도 돈없는 인간이라고 적당히 핑계대서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미안하네 어쩌네,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해야 하고 어쩌고.

답장 안 했다.


그 후로는 그래도 이웃지간이니까 적당히 아는 척 하면서 그냥저냥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뒷 산 산책을 마치고 내려 가는 길에 그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랬더니, 원래 지금 살던 남편하곤 재혼한 거며, 자신도 이런 저런 고민이 많네, 그런 얘기를 하더라.

뭐, 평범한 일상적인 대화이기도 했지만, 내가 상담해 줄 테니까 한 번 생각있으면 지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도 안 오더라.

그 여자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였겠지.

밀없이 조용히 지내고, 평상 시에 티를 잘 안 내니까.

뻔한 돈 문제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분명히 나한테 그 얘기를 물어 왔을 테지만, 본인도 거기에 단련이 돼 가지고 그럭저럭 욕 먹어가면서 사는가 보다.


결국에는 둘이 도망치듯이 이사를 갔는데, 이사가기 한 몇 개월 동안에 빛쟁이가 들이 닥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거의 정기적으로 들렸다.

그 전에도 그 부부 집 앞에서 차를 세워 놓고, 하도 심하게 문을 두들겨서 내가 가서 따졌다.

그 이유야,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조용히 가서 따졌다.

"뭐 때문에 계속 문을 두들기시는 건데요."

"돈받아야 되는데 안 나오잖아요."

"저 사람들 차 없잖아요. 그리고, 전화를 하셔야죠."

"전화도 일부러 안 받는데, 뭘."

"나올 것 같으면, 진작에 나왔겠죠. 어쨌든, 문 두들기는 소리가 저희한테도 들려요. 소리만 좀 안 나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문 두들기다 지쳐서 그냥 차타고 다시 돌아 가더라.

그 후로도 몇 번 찾아 온 것 같다.

집에 있으면, 들어 가서 싸우고, 없으면 실컷 문 두들기고 가고.


어찌나 단련이 됐는 지, 그 여자 깡다구도 용하다 싶었다.

빚쟁이들이 집찾아 오지, 전화하지, 돌아 가면서 공궈도 무덤덤, 이제는 남편이 빚쟁이들 못 오게 하라고 공구면 그 때는 큰 소리치면서 맞받아 쳐, 이사가기 직전에는 아주 대놓고 쌍욕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그냥 무덤덤하더라.

"C發, 남의 돈을 꿨으면 제깍제깍 갚아야 될 거 아이가!"

궁시렁 궁시렁, 궁색하게 변명하면서, 덤덤한 말투로 조용히 말로 하지, 왜 화를 내냐고 할 소리는 다 하더라.

가만히 듣자 하니, 그 여자는 다른 여자한테 돈을 꿨는데, 하도 안 갚고 속을 썩이니까, 열 바짝 오른 남편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말투 들어 보니까 영남, 부산 사람 같던데, 참 멀리서도 왔다.


이사 가고 나서도 집주인 보증금도 까 먹고, 공과금 안 내서 잔뜩 밀리고, 참 뷔페식으로 두루두루 해 먹고 간 모양이다.

이 것도 내공이라면 내공이랄 수도.

그 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내가 사는 집에 누군가 찾아 왔다.

이상하다, 이 어둑한 시간에 누가 우리 집을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더군다나, 이 주말에.

"어쩐 일로 오셨어요?"

한 50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혹시 여기, ㅅㅁㅅ 씨 안 살아요?"

"아, 이사 갔어요. 한 보름 쯤 됐죠."

"어디로 갔는 지는 모르시죠?"

"글쎄요, 저한테 말도 안 하고 갔으니까요. 돈 때문에 그러시죠?"

"네, 알겠습니다."


그 여자는 여전히 그 목욕탕서 일하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찾아 가던가 할 것이다.

그 집주인한테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나도 그 여자한테 데이고, 그 목욕탕 주인도 빚쟁이들이 그 여자 찾으러 자기 목욕탕 쫓아 와서 유명하댄다.

하이고.


간단하게 적자면, 그 여자도 문제지만, 돈을 꿔 준 이들도 잘못이 있다.

본인들은 돕는 마음으로 줬다지만, 그 돈을 꼭 받아야 될 것이라면, 확실한 계약서를 써야 했다.

안 갚는다면 이러쿵 저러쿵할 것 없이 바로 법으로 걸어 버려야 한다.

만일, 그 돈을 안 꿔줬다면 그 여자는 다른 이에게 손을 벌렸을 것이고, 그래도 돈을 빌리지 못 한다면,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게 돼 있는 것이다.

돈을 못 꿔서 자기가 정말 당장 끼니를 먹지 못 할 정도라면, 배를 주려가면서 자신의 못된 버릇에 대해 심각한 고뇌를 하면서, 이대로 살아야 하나, 처절하게 자문하면서 인생의 답을 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돈을 꿔주니까, 자꾸 의존심만 키우고, 없는 대로 자족을 하지 못 하고, 자꾸 꿔서 돌려 막는 식으로 살아 버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여자는 그 걸 깨지 않는 한, 평생 저러고 살 여자이다.

옛말에 저런 여자를 '빌어먹는 년'이라고 했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쓰려고 했으나, 불쾌감을 주므로 순화해서 썼다.


자립정신으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족할 줄 모르고, 남에게 아첨하면서 빌어 먹고 살다가 인생을 마친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여자 주변에는 식구나 친구도 연락이 끊겼을 것이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지인에게부터 손을 벌리게 돼 있으니까.

저러다, 평생을 손벌리면서 악연 만들면서 빌어먹는 년으로 외로이 혼자 생을 마감하겠지.

그 빌어먹는 근성, 그 여자의 정신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그 정신의 밥을 준 이들은 돈을 꿔준 이들이기도 하다.

꿔준 이들이야, 그 돈 털고 다시 살면 된다지만, 저 여자 인생은?

애초부터 꿔주기 전에 저런 여자인 걸 알았다면, 그래서 서로 원수될 걸 알았다면, 그냥 나처럼 핑계대서 안 꿔주면 될 텐데.

본인 자업자득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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