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북한산에서 조난

2021-01-10 22:44:55

by 속선

서울에 살았을 때 일이다.

한 5 년 전 무렵이었겠지.

홀로 북한산 등산을 갔었다.

바로 북한산 자락에 살았던 지라, 산을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 코스가 아마 구기동에서 비봉 오르는 코스였을 것이다.

등산하기에는 늦은 오후 느즈막 에 올라 갔는데, 그 때는 스마트폰 후레쉬를 과신한 것이었다.

느즈막이어도 산길이 분간 갈 정도 석양빛에 내려 올 참이었고, 설령 어둡다 하더라도 스마트폰 후레쉬로 산길을 비추면서 내려올 계산이었다.

그렇게 되도 않는 여유를 부렸는데, 비봉 정상에는 둥그런 바위가 솟아 있는데, 거기까지 올라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지.


늦은 시각에 제대로 된 장비나 등산복을 입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평상복, 운동화에, 게다가 그 위험한 비봉 바위를 올라 타다니.

그 당시에는 한창 선도 수련에 입문해서 빠져 있을 때였다.

수련자들의 낭만은 또 산 아니겠는가.

기왕이면 근사한 곳에서 수련하면 뭐가 트이리란 허황된 심보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렇게 가파른 비봉 바위에 조심스레 올라 앉아서 서울 시내를 바라 보며 수련을 했다.

한 3~40분 수련을 했는데, 제법 바람이 불었겠지.

그런 특별해 보이는 곳에 수련하면 더 잘 되냐? 천만에!

그냥 그 것은 기분 내기에 불과하다.


수련을 잘 마치고 바위를 내려 온 것까지는 좋은데, 어둑한 하산길이 걱정이다.

내 자신은 왔던 길, 사람 발길에 의해 난 길로 다시 되돌아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난 길이란 것이 어둑해 지면서 분간하기가 모호해 지고, 덩달아 중요한 갈림길에서의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엎친 데 덮쳐서 스마트폰 배터리도 이미 다 고갈되어서 비출 수도 없었다.

느낌 상으로는 전체 산에서 한 3부 중턱까지는 내려 온 것 같은데, 나머지 길에서는 완전히 방향을 잃고 말았다.

이상한 느낌이 본격적으로 든 것은, 나는 분명히 바르게 간다고 했으나, 길이 점점 정형화된 길이 아닌, 자꾸 수풀과 바위 덩어리를 밟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등산로라면, 잔돌이 섞인 완만한 흙길이어야 할 텐데, 그 때부터 정말 위기를 느꼈다.

더군다나, 너무 산길을 걷다 보니 다리힘은 빠지고, 늦여름 즈음이었나, 기온은 제법 내려 가고, 정말 그 야산에 막막하더라.

얼마나 등산로를 벗어난 건 지, 아니면 당연히 밤이라 등산객이 없는 것인 지,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양말 안에 바지단을 넣고, 움츠려 있으면서 체온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러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기서 더 헤쳐 나가자니, 전혀 방향을 가늠할 수 없고, 이대로 하룻 밤을 지낼 수도 있겠지만, 그 깜깜한 곳에 혼자 있자니, 그 험한 야산이 무섭더라.

하루 고생하지 죽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대로 추위에 떨며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정말로 바늘 구멍같은 희망은 스마트폰에 있었다.

당시 기종이 베가 아이언이었는데, 간혹 겪는 오류가, 방전돼서 스마트폰이 꺼진다 하더라도, 막상 바로 켜 보면 오히려 잔량이 남아 있는 증상이 있었던 기종이었다.

이 것이 마지막으로 타개할 수단이었다.

간절한 심정으로 다시 스마트폰을 켜 보는데, 기억은 안 난다.

한 15 퍼센트 가량 있었던 듯 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이 다시 꺼지기 전에 얼른 119에 걸었다.

조난을 당했는데, 방향을 전혀 종잡을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LTE하고 위치를 같이 켜 보라고, 그 걸로 구조대가 갈 거니까 기다리란다.

가만히 있다 보니, 또 주변에 개 소리가 들렸다.

야산 개가 그리 고정된 곳이 아니라면 한 방향에서 일정하게 짖을 리가 없고, 먼 발치지만, 내가 있는 위치는 필시 인근 민가에서 머지 않은 곳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닥인 스마트폰을 겨우 움켜 잡으며 소방서와 몇 차례 통화를 하고, 필요한 게 아니면, 화면을 켜 보는 것 조차 겁이 났다.한 30 분 가량이 지났나, 구조대가 오는 반가운 발 소리가 들려 왔다.


구조대 두 명이서 나를 찾아서 인도하는데, 어라?

의외로 내가 조난당한 곳은 인근 사찰에서 머지 않았던 곳이네.

사찰 이름은 모르겠는데, 지하 굴을 지나온 것은 기억난다.

구조대의 차를 타고 당도한 곳은 구기 터널 인근이었다.


내가 얼마나 북한산을 쉽게 생각하고, 내가 분수도 몰랐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 스마트폰이 아니었더라면, 아니, 애초부터 그런 준비 부족이라면 오르질 말았어야 했다.

그 때 북한산에서 조난 당한 것은, 평생가도 잊지 못 할 악몽과 추억이 될 것이다.

글쎄, 내가 무사히 구조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구조대원 덕도 있지만, 북한산신의 도움도 있지 않을까.

산에는 산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던데, 염치도 겁도 없는 이 젊은 친구를 불쌍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 후로 훨씬 산행을 신중히 생각하고 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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