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9 20:48:14
우리가 살면서 사모하던 누군가에게 청혼을 하거나, 프로포즈를 거절당했을 적에, 위로를 주기 위해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절반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맞다, 인류의 정확한 성비를 알지는 못 하지만, 뭐 50% 가량 될 것이다.
그 50%를 중심으로 기울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위로가 될 정도로 효과가 있는 말인가.
틀린 말은 아닌데, 위로가 되는 말도 아니다.
왜인고 하니, 나는 이 세상 이성의 절반 중 한 명을 또 고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나 뿐이 아니고, 동성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즉, 이 세상의 절반은 이성이 맞는데, 내 경쟁자도 이 세상의 절반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 보자.
첫 째, 이 세상의 전 인류의 70억 인구, 지금의 집계는 모르겠는데, 엄청난 인구이다.
그 35억 중, 첫 째로 언어가 통해야 하므로 자국민 또는, 같은 언어권에 있어야 한다.
내지는, 제 2 외국어로 언어가 능통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거의 자국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둘 째로, 연령이 비슷해야 하므로, 이 세상 절반 중, 오늘내일하는 어르신과, 이제 갓 출생한 신생아는 제외해야 한다.
곧 가실 분하고 연애하다간, 결혼식하기도 전에 장례식부터 치를 판이다.
아직 인큐베이터 안에 자고 있는 아이와 연애할 수는 없다.
차라리, 그 아이의 부모님과는 연령이 맞지만, 이미 그들은 결혼하지 않았나.
셋 째로, 나와 인연이 닿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직장 동료나, 학교에서 만나고, 중매나, 지인의 소개, SNS 등으로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자신과 대화가 통하고, 서로 잘 통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 간의 이성의 호감을 느껴야 한다.
이러한 채에 걸러서 겨우 소수에게 인연이 닿게 되는데, 아까 처음에 언급한 근본적 논리, 나만 그 사람을 좋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넓게 보면 다른 사람도 그 남자, 여자를 좋아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내가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좋아 하는 관점으로 쓰다 보니까, 글이 이렇게 됐는데, 내가 내 자신을 잘 가꾸고 성장시키다 보면, 지금 이 글처럼 아쉬운 상황에 처하리란 법도 없다.
역으로, 나를 좋아 하는 주변인이 많아 지면, 내가 그 중에 하나 골라 잡는, 아주 유리하면서도 즐거운 고민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
맞다, 하지만 그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