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내가 겪어 본 건물주

2021-01-14 21:02:56

by 속선

내가 서울 시내서 점포를 임대내서 장사를 했었다.

두 군데를 운영해 봤는데, 제법 그 상권 내에선 자리가 좋은 자리들이었다.


그만큼 임대료 역시 저렴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자리발이란 게 있으니까.


그렇다고 비싼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역시 많이 올렸지만.




정말 매매가 수십 억하는 건물의 소유자는 어떤 자들일까.


둘 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하나는 아예 건물 명의 자체가 기업 명의였고, 계약서도 기업명과 대표자 성명이 함께 들어 간다.


임대료를 입금받는 계좌도 기업명으로 돼 있다.


그 건물은 대로변을 접하면서도, 유흥가 초입을 물고 있었다.


1 층에는 당시에 던킨 도넛이 2 층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자리였다.


그럼, 그 건물주 회장님을 직접 친견했느냐.


계약서를 쓸 적에 그 회사의 건물을 담당하는 직원과 계약서를 썼다.


그 건물을 나갈 때까지 회장님 용안은 커녕, 명함 한 장 못 받았다.


그냥, 계약서 상의 글씨만 접할 뿐.




그 회사가 소유한 다른 건물인 줄은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 가능성도 있다.


계약서를 거기서 썼으니까.


그 곳은 명동 한 복판의 보기 드문 고층 빌딩이었다.


명동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고 작은 건물도 엄청 비싼데, 거기다 고층빌딩이라면, 수백 억을 넘어, 천억 단위까지 가려는 지 모르겠다.


거기서 임대 계약서를 쓰고, 공증까지 받았다.


공증은 자신들이 아는 곳에 가서 절차를 이행했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만일에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지 않고 계약을 어겼을 때, 법적으로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공증을 통해서 제 3 자에게 증인을 세우면, 이러한 법적 절차는 훨씬 간소화해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즉, 세입자에게는 전혀 좋을 것도 없는 것이고, 너희들 임대료 밀리지 말라는 초장 압박이기도 하다.




보증금이 있잖아요?


그 보증금마저 까먹는 애들도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해 놓고도 안 나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그런데, 임대료를 목숨처럼 성실 입금하는 나에게는 아예 해당사항은 없었다.


나는, 월세 살이를 많이 해 봤지만, 공과금, 카드 대금과 더불어 월세를 밀려본 적이 없다.


다만, 그 공증에 있어서도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임차인에게 전가시켰다.


자기들 딴에는 그 금액도 싸다고 하는데, 모르겠다.


공증을 받아서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겠다는 것은, 건물주에게 유리한 계약사항이므로, 이 금액은 건물주 측이 내야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조건이 싫으면 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 뻔하고, 설령 그 부분에 항변하더라도, 월세 인상이나, 다른 방식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염려가 들어, 그냥 항변하지 않고 낼 수 밖에 없다.




주택 임대도 아니고, 상가 임대면 을로 기고 들어 가야 한다.


권리금이란 특수성 때문에 이런 큰 핸디캡을 안고 있다.


건물주와 가급적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좋지, 초장부터 심기 건드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싸울 심산이면, 나가도 좋다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싸워도 늦지 않다.




제목으로는 직접 건물주를 만나서 겪어 본 것처럼 썼는데, 쓸 제목이 이렇게 말고는 마땅치가 않았다.


그 건물이 임명한 대리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는 알 수 있는데, 이 건 기억나는 대로 써 보겠다.


그 건물의 회장 님은, 제지업을 하는 분이시고, 아버지인 초대 창업주가 따로 계시고, 내가 계약한 분은 2 대 아드님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중소기업을 차릴 정도로 엄청 돈을 버신 모양이다.


내가 그 명동 고층빌딩에 갔을 때, 대리인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회장 님 얘기를 하던데, 어떤 직원인 지, 자신인 지, "회장 님, 엘리베이터가 좀 속도가 느립니다.", 그랬더니, "뭘 그 걸 갖고 그러냐, 느리면 느린 대로 타라." 식으로 대답했다던데, 아마 쓰고 보니까 그 명동 빌딩도 그 기업 소유인 것 같다.




원룸 집주인이, 들어 와서 살 학생의 경제적 여건이 어떤 지, 부모의 도움은 받는 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처럼, 건물주도 똑같다.


내가 계약할 적에, 그 대리인이 간이 면접 식으로, 장사를 잘 할 자신이 있느냐, 전 세입자와는 어떤 관계인가, 신용을 떠 본다.


상가 임대로 앉아서 불로소득을 받는 건 좋은데, 임차인 잘못 걸리면, 내내 싸우고 빼 내지도 못 하고,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얘기이고, 이 번에는 예민한 부분을 꺼내 보겠다.


그 임대 계약과 관리를 대리인이 모든 걸 위임받아 대행하다 보니, 임차인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건물주가 가까운 게 아니라, 그 대리인이 가까울 수 밖에 없다.


한 번 임대 계약을 써서 임대료만 잘 내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지만, 피할 수가 없이 마주 쳐야 하는 때가 바로 계약 기간 갱신 즈음이다.


이 시기부터는 슬슬 초조해 지기 시작한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그 시기에 정말 안 떴으면 하는 번호가 그 대리인 번호였다.


그 시기에 전화해서 말하는 용건은 뻔하기 때문이다.




"장사 잘 돼요?"


죽겠다는 건 너무 뻔하고, 그래도 안 된다는 식으로 답변을 한다.


어차피 요행식으로 하는 인사일 뿐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계속 장사할 생각이 있어요, 아니면 그냥 이 번 계약만 할래요?"


"더 하려고요."


"아, 그럼, 다음 갱신에는 임대료가 조금 오를 수 밖에 없겠는데."


"얼마나..."




진짜 옥신각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그 상승폭을 얼마나 줄이느냐, 정말 선전하면 상승없이 그대로 가느냐는 능력에 달렸다.


제 아무리 상권이 죽었다, 손님이 없다, 건물 어떤 부분에 하자가 있다고 항변해 봐도, 싫으면 나가라는 말에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 때 그 대리인에게 뇌물을 찔러 준다.


그 상승폭보다 뇌물을 줘서 무마시키는 것이 나은 선택이니까.


아무래도 서로 뇌물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대 놓고 말은 못 하지만, "용돈 좀 주면, 내가 잘 얘기해 주겠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얘기한다.


서로 정하기 나름인데, 내가 상대했던 대리인은 금액까지 정해서 요구하진 않았다.


어련히 눈치껏 알아서 주라는 식.




임대료가 상승되는 때는, 기존 임차인이 있으면서 갱신할 때, 그리고 임차인이 바뀔 때이다.


나는 처음 계약할 때 나가는 임차인이 대리인에게 뇌물을 주기로 약속한 걸, 이 놈이 안 주고 가는 바람에 내가 달래는 식으로 찔러 줬다.


"분명히 임대료 무마 조건으로 약속돼 있는데, 저 놈이 다른 소리하고 가는데, 이 걸 어떻게 할 거야."


별 수 있나, 날보고 얘기하는데 그 불똥이 나한테 튀었지.


어쩌면, 차라리 대화가 안 통하는 건물주를 직접 상대하느니, 도리어 대리인은 적당히 요리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또 모르는 것이, 건물주는 인상 의지가 없음에도, 대리인이 임의로 올린다고 겁줘서, 생돈을 타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서울 중심가 상권의 특수성인 지, 그러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거기서 정말 크게 장사가 흥한다면, 그런 것 쯤은 얼마든지 커버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 배포있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런 건물은, 건물주가 워낙 재산과 건물이 많다 보니 일일히 신경쓸 수가 없고, 그래서 임명한 게 대리인인데, 계약 자체는 건물주와 하지만, 실질적인 협상과 부딪히는 것은 대리인이 훨씬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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