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5 11:07:54
여기 이사오기 전에 살던 이웃집 아저씨가 있었는데, 술이 없이는 식사를 안 하시던 분이었다.
상당한 애주가였으며, 그러고도 밤에 어김없이 술잔을 기울이셨다.
아예, 현관문 켠에 소주 박스를 집에 쟁여 놨으며, 떨어 지면 항상 채워 놨다.
다양한 술을 즐겼지만, 흔한 소주, 그 중에서도 처음처럼을 많이 드셨다.
난 종종 같이 마시다가, 처음처럼이 조금 단 듯 해서 참이슬을 달라고 했다.
밤에는 나말고 변변한 술친구가 없어서인 지, 꼭 나를 불러서 술을 같이 마셨다.
처음에는 나도 공짜술 얻어 먹는 재미로 어느 정도 받아 줬는데, 가만히 보니까 아예 술메이트로 삼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공부해야 돼서 못 마신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섭섭함을 표하다가, 계속 오라고 해도 거절하니까, "공부는 무슨!", 하면서 나한테 대뜸 화를 내시더라.
그 때 선 긋기를 참 잘 했지.
그 아저씨가 당시에는 그냥 조용히 살아서 그렇지, 왕년에는 제법 잘 나갔다.
소를 키우는 목부였는데, 소를 키워 팔아 돈을 엄청 벌고, 당시 정계에도 커넥션이 있어서 덕도 좀 봤다고 한다.
경기도, 강원도에도 땅이 있는 등, 제법 재산이 있었고, 나 또한 그 아저씨가 신축으로 지은 집의 세입자였다.
부인과 함께 식당을 하고 있었고, 밭을 일구고 식당일을 하면서 지냈는데, 때때로 자기 세입자들도 불러서 술상 겸 밥상을 대접해 주었다.
그 때 일화가 하나 꺼내 본다.
그 때는 그 주인 아저씨 포함, 나말고 옆 집에 살던 세입자와 동석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술잔 주고 받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옆 세입자하고 아저씨와 대화 중에서 가벼운 농담이 있었는데, 그 게 발단이 된 것이다.
하도 그 아저씨가 매 끼니 술을 마시니까, 옆 세입자가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당연히 그 주인 아저씨는, 자기는 수십 년을 그렇게 마셨어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며 무용담을 자랑했고, 그 옆 세입자는 조심스레 웃으면서 "중독증세일 수도 있다."고 건넸다.
"중독은 무슨!"
그 때 나도 거기 가세해서 "제가 보기엔 조금 중독 같습니다."라는 말에 대뜸 발끈하시며, 소주잔을 내 앞에 내밀면서 이렇게 따졌다.
"내가 손을 떠냐?!"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내가 어른한테, 더군다나 집주인하고 중독이네, 아니네를 갑론을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
이제사 편하게 글로 표현하는데, 그 아저씨는 알콜 중독이 엄연히 맞다.
왜냐? 술없이는 식사를 안 하는데 물을 아예 안 마시고, 밤에 잠을 자질 못 하는데, 이 것은 의존증인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검진 때 술마시지 말라는 의사 말에, 일주일 간 딱 술을 끊었다고 하지만, 평상 시 생활에 있어서 술없이 못 산다고 하면, 이 것은 엄연한 중독인 것이다.
다만, 알콜 중독자가 술에만 절어서 정상생활을 못 하고 폐인처럼 지내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그 아저씨는 그래도 할 일은 너끈히 다 하고 사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폐인, 정신병 이미지가 있는 알콜 중독자라는 단어는, 그 아저씨에게 무척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기엔, 술을 마셨을 때 손을 떠냐, 안 떠냐를 기준으로 알콜 중독을 단정하는 것은, 참.
손을 떠는 것으로 알콜 중독으로 볼 게 아니라, 그 것은 수전증 증세로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수전증과 알콜 중독을 혼동하고 계신 거라 나는 믿는다.
그런데, 그 일화와 별개로, 나 역시도 밤에 한 잔 하지 않으면, 하루를 마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그 아저씨처럼 식사 때 물 대용으로 술을 마시진 않고.
많이는 못 마신다고는 하나, 나 역시도 의존증 증세가 조금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