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비로소 체감하는 돌림병의 심각성

2021-01-15 19:24:14

by 속선

시내에 장보러 가는 날이다.

한 동안의 강추위가 누그러져, 불어 오는 훈풍이 참 싱그럽고 반갑다.


늘 가던 식당에 들러서 늦은 점심을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올 때까지 전혀 몰랐다.


시청 정문에 있는 카페가 저렴하고 생긴 지 얼마 안돼서, 거기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복도에는 들어 가지 못 하도록 테이프로 막아 놨다.


단 번에 거리 두기 지침이라는 걸 알았고, 포장 밖에는 안 된다고 하시더라.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제사항으로 이행하고 있는 듯 했다.


매장 안 불은 환하게 켜 있는데, 업주인 지, 종업원인 지, 어쩐지 단 둘이서 앉아만 있더라.


시내에 카페는 많으니, 가까운 다른 곳으로 갔다.




차창 너머로 카페 안에는 손님이 앉아 있는 걸 보니, 모든 카페가 그렇지 않을 거란 안도감이 들었다.


주문하려고 카운터에 갔는데, 음료만으로 좌석 이용은 안 되고, 브런치를 주문해야 된다는 것이다.


얼마냐니까, 12000 원이란다.


"식사하기 애매한 때라서... 다음에 올 게요."


두 번 퇴짜를 맞으니까, 다른 곳도 비슷할 거란 불안감이 들었다.




언덕 넘어서 시내 방면으로 제법 걸어서 이디야에 들렀다.


"방문증 한 번 써 주세요."


방문증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도 좌석 이용을 못 하게 막아 놨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분은 손님이 아니라, 업주였다.


"마시고 가는 건 안 돼요?"


"네, 테이크 아웃만 돼요."


"그런데, 이 게 언제 쯤 끝날까요?"


"글쎄, 그 건 발표가 나야 알 텐데, 아마 18일 즈음에 알게 될 거에요."


"그렇군요, 잠깐 앉아 있다 가려고 했는데. 다음에 올 게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맞은 편의 투 섬 플레이스에 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이 쯤 되면 의미없다는 걸 알지만, 롯데리아에 가도 식사만 가능하지, 음료는 테이블 이용이 안 됐다.


시내에 들러서 카페를 이용한다는 건, 나에겐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잠시의 여유와 기분전환이었다.


자주 시내에 나오지 않으므로.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야 오늘 하루 시내를 뺑뺑이 돌고 말았지만, 이 조치로 인해 얼마나 매출적 타격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속이 탈 지를 말이다.


나는 칩거 생활을 하고 있느라, 뉴스를 통해서 세상의 실상을 겨우 알 뿐, 내가 치열하게 사는 도시인들의 애환을 어찌 알겠는가.


나 역시도 장사를 말아 먹은 적이 있어서 그 속을 조금 안다.


단지, 나는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지만, 그들에게는 오는 손님을 보내야 하는 심정을.


건물주들도 어려운 시기에 자발적으로 이 고통을 감내해 줬으면 한다.


임차인도 임대인에겐 귀한 손님 아닌가.




그냥 터미널 대합실서 시간이나 적당히 보내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랬더니, 대합실 좌석조차 한 칸 단위로 착석하지 못 하도록 안내문을 붙여 놨다.


주말 시내 버스 시간이 축소되고, 시외 버스 역시 비 인기 노선은 축소, 내지는 폐지되었다.


내가 겪어 본 가장 강한 방역 조치였다.


불편함을 넘어, 거의 절규에 가깝게 치닫고 있구나를 느꼈다.


비참한 것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다.


이 죄를 언제 다 갚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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