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6 22:56:06
우리 국민 중에 신라면 안 먹어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건, 통계를 안 내 봐도 정확하다.
나 역시도 생활비가 넉넉치 않은 관계로, 하루 한 끼니에 라면은 꼭 식사로 한다.
어쩔 때는 세 끼니를 전부 라면으로 먹을 때도 있다.
원체 라면을 즐기기도 하고, 게다가 라면이 식사 대용으로 섭취하기엔 제일 싸다.
다들 알겠지만, 나처럼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 서너 끼니 정도는 라면 많이 드실 것이다.
그 식사 대용으로 아예 쟁여 놓고 사 먹는 대표적인 라면.
대한민국에서 라면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라면.
또, 라면 한 상품 만으로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라면.
분식점에서 선택권 없이 나오는 라면.
단일 상품 중 가장 많이 팔린 라면.
우리네 삶에 가장 친숙한 라면이 바로 신라면이다.
나 역시도 여러 라면을 두루 먹어 보았지만, 신라면의 그 묘하게 칼칼하면서도 표고버섯과 소고기 국물 맛이 으뜸이었다.
때론, 형편없는 밥상이나, 입맛없을 때는 외려 라면이 더 낫다.
그런데, 그 국민라면, 신라면 맛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랜 공감대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제법 많이 이들이 신라면 맛이 변했다고 느끼고, 아예 다른 라면으로 주식 라면을 갈아 탔다고도 한다.
신라면이 나 어린 시절, 학창시절 때는, 지금보다 라면이 다양하지 않았고, 다양하지 않아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정말 맛이 좋았다.
면이 지금보다도 가느다랬고, 그 특유의 감칠맛과 얼큰한 맛은, 정말 작정하고 잘 끓이면, 타 제품 어느 라면도 신라면의 독보적인 맛을 따라 올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500 원의 감동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의 그 좋았던 기억으로 신라면을 먹어 보지만, 영 기대에 미치지 못 한다.
면발이 너구리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두꺼워 졌고, 탄력이 없이 왜 이리 면발이 버글거리는 지.
더군다나, 국물은 내가 예전에 먹었던 신라면도 이렇게 느끼했나 싶을 정도로 기름지다.
바뀐 레시피의 물 양도 내 입맛에는 영 시원찮다.
전에는 500ML로 끓이라고 나와 있지만, 지금은 550ML로 바뀌었다.
개인의 기호 차에 따라서 물양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고, 나 역시도 470ML 정도로 끓여서 먹는다.
하지만, 설명서 상의 레시피란, 라면이 가장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최적치이므로, 과연 550ML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물 양이란 데에 영 공감이 가지 않는다.
아마, 하도 나트륨으로 인해 살이 찐다, 스프가 건강에 안 좋다는 말에 시달려서, 그럼 물 양을 늘려서 먹도록 바꾼 듯 하다.
아무리 먹어 보아도, 더 이상의 90년 대에 맛 보았던 감칠맛과 탱탱함이 살아 있는 신라면 맛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도리어, 예전의 면발은 신라면 작은 컵에서, 국물 맛은 신라면 큰사발면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봉지면은 정말 영 아니었다.
검색하면서 알게 된 농심의 해명은, 신라면 맛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왜냐? 스프에 쓰이는 고추의 원료가 매년 맛이 조금씩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라면 맛이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쎄, 그렇다고 보기엔 맛이 예전과 너무도 다른데.
그런데, 농심의 해명이 맞을 수도 있다.
농심이라고 시장 점유율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신라면 맛을 굳이 맛없게 바꿀 이유는 없고, 신라면 맛이 크게 변화했다기 보단, 내 입맛이 변화했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라거만 마시다가 호가든과 블랑을 처음 마셨을 때의 그 감동을 지금도 기억한다.
호가든은 처음에 웬 굴소스 맛 같았지만, 지금은 그 특유의 향을 상당히 즐기게 되었고, 블랑은 맥주에서 예술적인 꽃향기가 난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여전히 즐겨 마시긴 해도 예전같지 않다고 느낀다.
신라면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라면 말고도 농심의 다른 라면, 너구리, 짜파게티도 예전같지 않다.
농심의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다소 줄어 든 편인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어쩄거나, 돈 500 원에 느끼던 내 어린 시절 신라면의 맛은 영영 느낄 수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