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2 23:48:31
한 번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 평생 벗지 못 한다.
나 역시도 중학교 무렵부터 부모님께 졸라서 안경을 맞춰 쓰기 시작했는데, 안경을 벗으면 모든 사물이 실루엣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아버지가 당시엔 사업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당시 삼성 매직스테이션 컴퓨터는 제법 비쌌다.
아버지가 사주신 컴퓨터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것도 있고, 그보다 더 어릴 적에는 콘솔 게임을 달고 살았다.
컴퓨터보다 그 게임 화면에 눈을 많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는 게, 내가 어려도 게임을 굉장히 잘 했다.
그 때 기록 세우던 게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고, 그 어린 녀석이 스스로 게임기를 TV와 연결해서 혼자서 잘도 놀았다.
지금도 몇몇 게임은 곧잘 하고, 전보다는 아니지만, 난 게임에서 내가 잘하는 게임을 진다던가, 내가 정한 기록에 미달하면, 혼자 화를 낸 적도 많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
쓸 데 없는 얘기가 길었는데, 어쨌든 안경잡이한테는 안경이 그마만치 중요하다는 걸 설명하다 보니 이리 길어 지게 됐다.
여태까지 안경을 여러 번 맞추면서, 테 멋만 부릴 줄 알았지, 렌즈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렌즈? 그 까짓 것, 그냥 시력 교정해서 잘만 보이면 되는 것 아닌가?
난 다른 종류가 있는 줄도 모르고, 렌즈는 오로지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호야부터 시작해서 너무 다양했던 것이다.
여러 종류 중에서 원체 메이드 인 재팬을 선망했던 지라,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토카이 렌즈로 정했다.
호야도 일본 렌즈로 기억하는데, 이 게 워낙 OEM이 많아서 미심쩍었다.
큰 의미는 없지만, 직생산이 아니면, 브랜드의 네임밸류는 많이 희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카이는 전량 일본에서 직생산.
미리 사둔 테만 들고 서울에 있는 안경점에서 토카이를 얘기하고 맞췄다.
그 게 두께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나는 어차피 큰 의미없다고 생각해서 제일 싼 걸로 맞추려 했는데, 조금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 한 단계 위는 다음 날 바로 된다고 해서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천천히 기다리자는 심산으로 제일 싼 걸로 했다가, 그렇게 기다릴 바에는 얼마 차이도 안 나고, 빨리 받아 보고 싶은 심산에 추천해 주는 걸로 맞췄다.
글쎄, 일부러 더 비싼 걸로 유도하는 상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연히 해 봤지만, 고작 해 봐야 얼마 안 하는데 어떠랴.
다음 날 택배로 받아 봤다.
그 새로 맞춘 안경은 평상 시에 쓰고 다닐 것이 아니라, 외출이나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만 쓰려고 맞추었고, 또 내가 현재 쓰고 있는 안경의 스페어 용이기도 했다.
가끔 현재 쓰고 있는 안경을 초음파 세척할 때 새 안경을 쓰는데, 너무나도 현저한 차이가 났다.
물론, 그 간에 내 시력이 변한 것도 있겠고, 그냥 평범한 국산 렌즈에다, 워낙 험하게 썼어야지.
그렇다고는 해도, 루티나 렌즈로 본 사물은, 마치 정교한 그래픽 화면을 보는 것처럼 진하고 선명했다.
나는 분명히 집 안 청소를 어느 정도 깨끗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루티나 렌즈를 쓰고 나서, 나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고작 반 미터도 안 되는 사물을, 루티나 렌즈로 보니까 미처 닦지 못 한 얼룩이며, 더러운 부분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쓰던 안경의 세척이 끝날 때까지 새 안경을 쓰고, 난 집안 청소를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태가 누더기에다 저렴한 국산이라 치더라도, 루티나와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내 집 청소가 이토록 덜 되었는 지를 몰랐을 정도로, 루티나 렌즈는 진하고 선명했다.
그 동안 뭣도 모르고 테만 보고 렌즈를 등한시 하던 내 자신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토카이에서 제일 싼 루티나인데도 이렇다.
이보다 훨씬 비산 렌즈가 많을 텐데, 이보다 얼마나 좋을 지.
하지만 고민은 없다. 조만간 테만 마음에 드는 걸 사면, 이 번에도 고민없이 루티나로 맞춘다.
한 번 쓰면 몇 년은 쓸 테니까, 그 때 가서 여유있으면 더 좋은 걸로 맞추면 되는 것이고, 아니어도 현재 쓰고 있는 루티나는 너무 놀라울 정도로 만족스럽다.
이래서 비싼 렌즈를 사는구나, 여태 맞춘 렌즈 중에 가장 비싸게 투자한 것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