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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귀농, 귀촌과 텃세

2021-01-24 18:37:03

"다 때려 치우고 나도 시골이나 갈까?"

넥타이를 풀고, 석양이 지는 한강변 벤치에 앉아, 깡소주를 들이키며 읊조리기 좋은 소리이다.


삭막하고 치열한 도심 생활을 하다 보면, 고층 빌딩에 둘러 쌓인 내 모습이 쥐새끼 마냥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칙칙해 보이던 콘크리트의 재색이 더욱 칙칙스러워 보인다.

주변에 마주 치는 모두와 인사를 하고 같이 지내지면,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전부 경쟁자들이라는 생각에, 뭔가 모를 외로움, 소외감이 든다.

그렇게 떠난 이들은 이제 한적한 시골을 찾게 된다.

도심을 떠난 불편은 어느 정도 감수할 만 하다.

시골이라도 시내에 웬만한 기관과 시설이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이제는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택배로 물건을 받아 보니까, 도심 생활과의 갭은 많이 좁혀진 듯 하다.

도리어, 한적한 자연 산세를 즐기면서 건강과 여유를 찾기 위해 지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 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사람이다.

도심 속 생활이 빡빡하고 치열하기는 하지만, 진짜 고충은 사람이 아닐까.

그 고민은 귀농, 귀촌을 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골은 텃세가 심해서 살지 못 한다는 말이 괜시리 나온 게 아니다.

그 것은 지역 곳곳, 엄연히 벌어 지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것은 시골과 시골 사람을 몰라서 당하는 것이지, 알고 시골 주민을 대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아직도 집락촌을 이루고 있는 시골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밀집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시골, 더군다나 농업으로 생업을 하시는 분들은, 마을 공동체라는 개념이 철저하게 박힌 분들이다.

개인 전답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혼자서 붙일 적에는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고, 또 자신도 그렇게 불려 가서 도와 준다.

또, 마을 안의 여러 시설들, 수도나 공용시설, 공용장비들을 국가 도움 없이 마을 주민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련한 것들이 있다.

갓 이사를 했을 적에 이런 부분에 요구를 한다면, 주민들의 그런 얘기도 어느 정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주민들이 힘들여서 마련한 시설을, 아직 낯선 외지인이 이바지를 한 게 없다면, 일종의 무임승차를 한 듯 한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많은 분들이 귀농, 귀촌 시에 이러한 부분으로 오해가 생겨 많이 다투는 것 같다.


그러한 마을 형태로 된 곳은, 도시처럼 나 하나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면 착오이다.

그 곳은 개인 집과 전답을 보유한 마을 공동체이지, 옆 집 이웃 보면 그냥 인사나 하고 지나 가는 걸로는 부족하다.

대를 이어 사는 토착민들도 많고, 마을 안에서는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지낸다.

마을 안에서는 주민들끼리만 교류를 하기 때문에, '소문'이란 게 돌 수 밖에 없다.

마을 내에서 누군가 이바지를 많이 하거나, 기여를 한 부분이 있다면 영웅 대접을 받지만, 행여나 밉보이거나 비겁한 것처럼 보인다면, 당사자도 모르게 소리소문이 안 좋게 도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다.

그 때부터 마을 사람들 태도가 달라 지게 되고, 소외감을 견디지 못 해 떠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귀농, 귀촌을 하려면 이러한 부분을 알고, 찾아 보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친척 중에 유지가 있어서 소개로 들어 가면 좋고, 그런 연줄이 없다면, 부동산이나 마을 유지와 잘 알아 봐야 한다.

이사를 갔다고 끝이 아니고, 제 아무리 시골 분이라도 내가 공동체에 갓 들어 왔다면, 내가 먼저 붙임성있게 접근해야 한다.

시골 사람들이 먼저 인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원주민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공동체가 요구하는 일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생활을 한다면, 귀농, 귀촌의 안착은 성공적이랄 수 있겠다.

물론, 거기서 얼마나 안정적인 노 하우를 습득하고, 소득을 올리는 지는 별개겠지만.

원주민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원주민이 텃세를 하기는 커녕, 잘 알려 주고 많이 도와 주려고 한다.

그러한 속내는 모르고서, 마냥 시골 사람들을 나쁘게 보는 오해는 않았으면 한다.


나는 시골 사람들을 웃으며 잘 대할 자신이 없다면, 역시 고민할 게 없다.

모든 시골이라고 다 마을 집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귀농, 귀촌을 해서도 나 하나만 챙기고 살고 싶다면, 마을이 아닌 집을 찾으면 된다.

예컨대, 마을로 형성되지 않은, 집들이 드문드문 이뤄진 곳.

내지는, 개발로 외지인 유입이 많아, 원주민이 득세하지 않은 곳.

마을을 이루더라도 농사를 짓지 않고, 단순히 모여만 사는 곳도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텃세의 이유는 없다.

어쨌든, 마을이 아닌 따로 떨어진, 독립된 집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집에 살면 된다.

마을 주민과 마주칠 일이 없고, 마을의 인프라를 이용하지 않는 집.

그러면 마찰을 겪은 매개체 자체가 없다.

단, 마을을 벗어난 그런 집은, 마찬가지로 내가 텃세를 받을 일이 없지만, 또 어려울 때 도움 받지도 못 한다.

그럴 감당이 된다면, 그런 집에 살아도 좋다.


나 역시도 외딴 시골에 와서 지역 주민들과 우호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아무런 마찰 없이 아주 잘 살고 있다.

서로 어느 집 누구인 지, 뭘 하는 주민인 지는 이제 속속들이 다 안다.

가구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 곳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 시각에서 나는 외지인으로 비춰질 테고, 절대 그들 눈 밖에 나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현지인이 된 것이다.


가끔 방송을 통해 보는 서울의 모습, 치열하게 사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볼 때, 나도 시골 사람이 되었다는 현실감이 들기도 한다.

마을 시내에 그 서울에 흔하디 흔한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따금 서울에 갈 때나, 인근 도시에 여행차 가서 즐기면 된다.

그 외의 나머지는, 자연을 기대고 싶은 내게 너무나 좋다.

어디를 가든 비경지가 아닌 곳이 없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에 안기고 싶어 휴양지로 이 곳을 찾지만, 나는 반대로 야경 속 빛나는 화려한 불빛과 사람들이 즐비하는 백화점, 거리를 향유하기 위해 도시를 찾는다.

나는 거기서 새로이 들어선 상점, 흥청대는 유흥가 속에 비틀대는 사람들, 대기업 빌딩이나 정부 기관 정문 앞에 데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양각색한 도시의 다채로움을 담고 돌아 온다.


얘기가 다르게 샜는데, 귀농, 귀촌할 때 텃세가 걱정된다면, 독립된 집을 찾아라.

가급적 매매 말고, 임대로 살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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