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

2021-02-01 23:35:24

by 속선

내가 서울 수련 도장에 한창 다니고 있을 때였다.

간혹 원장 님께서 직접 수련을 지도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였다.

수련생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원장 님이 직접 물으셨다.


"인간이란 뭔가?"


참,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도를 추구하는 수련단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수련생들이 말이 없자, 특정 수련생을 지목해서 물으셨다.

내 기억으론, 두 번 째 수련생이었을 것이다.


"자네가 한 번 대답해 봐. 자네는 그래도 기자니까,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고 해서 알 것 아니야."

"으음... 인간이란... 아주 작고 힘없는 존재다."


그 대답을 들으시더니, 약간 역정의 기색으로 발끈하 듯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여러 분, 모두 저 마크를 봐요."


원장 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그 수련 단체의 마크를 새긴 목판이었다.

큰 원이, 점에 가까운 작은 점을 내포하고 있는, 아주 간결한 마크였다.


"저기 큰 원이 작은 원을 감싸고 있잖아요. 큰 원이 대우주이고, 작은 원은 바로 우리, 인간이에요. 이 우주는 바로 핵심에 있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해요."


그 도반의 대답인 즉슨, 자연의 천재지변에 무력하게 떼로 죽어 나가 떨어지는 인간들이, 아주 작고 무력한, 벌레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외에도, 인간은 태어나면 모두 죽음에 속박된, 생노병사의 굴레 안에 갇힌, 뭐 그렇게 본 모양이다.

하지만, 그 수련단체의 원장은 인간은 누구나 노력하면 초월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그 것이 수련의 목적이며, 그 것으로 자연과 합일을 이룬다는 가르침을 펼치는 분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나약한 답변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나는 사실 둘의 성향을 오래 전부터 다 파악을 하고 있었다.

그 도반은 내면 깊숙한 곳에 염세적인 성향, 불가에 귀의할 법한 무거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 경력의 유력 언론사의 기자인 데다, 사회적 위치를 봤을 적에 그래도 평범한 직장인은 넘는 수준인데도 말이다.

도라던가, 속세를 떠나 피안, 불교에 대한 환상이 있는 듯 보였다.

반면, 원장 님은 젊은 나이에 도에 대한 갈망으로 직접 산 속의 도사를 찾아가, 몸수 수련은 전수 받고 사회로 환속한, 그야말로 전설적인 분이셨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항상 젊은 이들 못지 않은 패기와 넘치는 기운을 발산하는 분이셨다.

그야말로 입산수련을 하신 분인데, 전혀 염세적인 사상은 커녕, 이 세상 속에서 건강하고, 희망차게 잘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분이셨다.

그런 두 분을 이미 파악한 지라, 나는 그 도반이 그런 답변을 할 줄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고,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원장 님이 화를 내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넘어 갔지만, 당시 원장의 답변은 그 도반에게 도움이 되는 답변이 아니란 것이 내 생각이다.

둘 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도반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보다 나은 생각으로 다듬는 역할은, 순전히 가르치는 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원장 님 생각은, 자연 속에 우리가 작다고 해서 기죽고 살지 말란 뜻으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갑자기 사자성어가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인간은 우주 최고의 존재니까, 그런 생각에 젖지 말라는 것이다.

최고의 존재나 마나, 그 도반에게는 살면서 인간이 겪는 환란과 고난, 그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가 않는데, 그 의문에 대한 즉답은 아닌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완벽하게 동감한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쓸 줄 모른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과 생로병사는, 첨단을 치닫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신비스런 화두이다.

종교에서 아무리 뭐라고 하더라도, 왜 죽음이 존재하고, 죽음 너머에 사후 세계란 존재하는 지, 안 하는 지, 존재한다면 그 곳에서 어떤 삶을 사는 지에 대한 명확한 확답을 얻지 못 했다.

물론, 기성 종교들이 떠들어 대는 경전 속에 답변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진리로 납득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만인이 모두 깨알만 한 의혹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납득할 수 있는 증명을 누가 해 줬단 말인가?


인간이 종교를 믿는 건, 나약해서이다.

공산당에서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는 데에는 일부 동의한다.

인생을 살면서 풀 수 없는 문제와 벽에 상처를 입는 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단순히 후시딘 발라서 반창고 붙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인 것이다.

만일, 기성 종교가 정말 참 진리가 맞다면, 어째서 종교끼리 세력다툼을 하고, 왜 아직도 인류는 방황 속에 쓰러져 가고 있단 말인가.

다들, 증명되지 않은 논리라도 믿지 않으면, 제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종교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에 수련하면서 겪은 일화는 몇 가지 더 있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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